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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연이야기/리뷰

정가 음악극 - <이생규장전>


리뷰.



수제천을 아시는가. 그러면 운명교향곡은 아시는가.

황태중임남이 무엇인지 아는가. 도레미파솔은?

정간보를 읽을 줄 아는가. 그렇다면 오선보는?

당신은 독일사람인가 한국사람인가.


정가는 몰라도 이탈리아 가곡은 열창한다는 자칭 음악애호가들.

서양의 오페라는 아름답다면서 한국의 정가 음악극은 지루하다는 공연 마니아들.

당신은 백인의 뿌리를 동경하는 바나나 족속인가.



2011년 지금 우리나라는 도처에 음악이 넘친다.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k-pop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음악인가. 진정으로 한국인의 심성과 예술혼을 보여주며 세계인들도 사랑하는 음악은 너무 적다. 서양인들이 깔아놓은 음악적 멍석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황병기 선생 같은 일부 뛰어난 명인들이 있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몇몇 천재들의 노력만으로 우리음악이 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만의 k-pop이 시대와 나라의 경계를 넘어 떳떳해지려면,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 공연을 만들려면 우선 우리 전통의 틀과 정신을 알고 현대의 축에서 새롭게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길이고, 그럴 때에만 한류바람은 바스라지지 않고 탄탄히 확산시켜갈 수 있다.





이 같은 정신을 중요한 줄기로 잡고 일관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석만 선생님의 공연들은 그래서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세계 흐름을 따르고 모방하기에 급급한 요상 복잡 희한한 실험들 사이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 실험의 뿌리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몸소 보여주고 연구하는 중견 연출가가 바로 그이다.

2004년에 최초로 '선가자 황진이'로 정가극을 한국 공연 계에 선보인 그는 이번에는 창작 정가와 디지털 영상을 통해 정가의 아름다움을 더욱 친근하게 즐길 수 있도록 연출했다. 새로운 정가극의 붐을 일으키고 싶다는 그는 ‘조선의 판타지 문학이 현대 공연예술 미학과 창작정가를 만나 우리음악의 창작지평을 넓힐 것을 기대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보물창고 저 깊숙이 묵혀 있던 우리의 소리들과 공연작품을 끄집어 찾아내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그의 숭고한 노력을 관객들도 하나 둘 느껴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우리 음악극’이라 하면 노인들이나 찾는 마당극부터 떠오른다는 일부 관객들의 말이 지금의 현실을 방증한다. 이번 공연은 파일럿 형식으로 창작, 공연된 것으로 내년에는 좀더 보완하고 넓은 무대로 옮겨 장기 공연을 통해 충분히 많은 관객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국립국악원의 대표 브랜드극으로 창작된 만큼 더욱 완성도 있는 레퍼터리로 자리매김해 갔으면 한다. 나아가 국립국악원의 자원을 활용해 더 좋은 정가 창작극이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공연에서 일단, 정가음악이 선비들의 지루한 음악이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라는 재인식과 함께 정가 음악극이 한국형 뮤지컬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제 내년 공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될 일이다. 많은 관객들에게, 우리 문화의 단절 속에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문화풍토에서 우리 모두가 꼭 봐야 할 공연이라 감히 밝히고 추천하고 싶다.


                                      - 고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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