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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연이야기/리뷰

드라마터그의 제작이야기 - <산적>

(2011 연극포럼 수록)

2011 한예종 연극원 레퍼터리, 함세덕의 <산적>
           - “드라마터그의 <산적> 제작 뒷이야기”     

                                                                                                                   - 드라마터그 고은령





 2011 봄학기 레퍼터리 <산적>의 프러덕션은 한예종 공연 사상 최다 배우와 최다 스태프, 최고 길이의 고전 원작을 자랑한다. 따라서 연출선생님 이하 모든 스태프들은 각자 역할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스트레스가 컸지만 서로 맞추고 협업해 나가는 과정도 순탄치 만은 않았다. 한마디로 다들 무척이나 고생했다. 물론 고생한 만큼 보람도 컸지만 어려운 공연이었기에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연습과정 중 차질도 있었고 공연 때 실수도 있었다. 여러 아쉬운 점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우리 ‘산적들’만이 해낸 실험들,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이른 바 ‘우리들만의 메이킹 스토리’라고 할까, 이 글에서는 프러덕션 내 드라마터그의 역할을 나열하는 데 그치기보다, 드라마터그이기에 더욱 자세히 소개할 수 있는 <산적>만의 제작 스토리를 풀어볼까 한다.



- <산적>을 선정한 이유 -
 <산적>만의 제작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함세덕의 <산적>을 공연작으로 선정된 이유부터 밝혀야 할 것 같다. 연출이신 김석만 선생님의 작품 선택 동기에서부터 우리 제작과정의 틀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1. 학교 공연으로서의 적합성과 필요성
 선생님은 공연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생각하셨다. 다른 곳이 아닌, 2011년 한예종 연극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모여 올리는 레퍼터리 공연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하신 것이다. 학생들이 많이 보게 될 공연이므로 교육적인 목적을 생각지 않을 수 없고, 외부에 드러내는 한 학기 대표 레퍼터리 공연이므로 학교의 이미지와 연극원의 방향성도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첫째, 평소 한국 고전이나 근대극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현실에 안타까워 하셨던 선생님은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한국 근대극에 대한 환기와 교육을 위해서 선택하신 바가 있으셨다. 배우들이 어려운 옛말 체 대사를 구사해보게 되고, 전 구성원들이 근대극과 전후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여 현대에서의 무대화에 대해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큰 규모의 공연이라는 장점도 작용했다. <산적>은 실러의 <군도>를 번안한 작품으로 5막 구성이며, 길이도 길이거니와 화려한 궁궐 및 전쟁 신 등 스케일 큰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큰 규모의 공연 경험은 배우이든 연출이든 모든 파트에 필수이지만 요즘은 외부에서도 이 같은 규모의 공연은 잘 올려지지 않기에 <산적>을 통해 학생들이 큰 무대에 대한 실전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셨다.
 셋째, 고려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취약해지는 학생들에게 배우, 연출, 기타 모든 스태프들이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이해해두어야 할 ‘사극 공연’에 대한 기본 이해와 연습을 할 수 있기를 바라셨다. 사극연기, 고전의상과 무대 등 각 파트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놓이게 되는 것이었다.

2. 함세덕 작품의 가치
 함세덕 작가는 친일 작가, 월북 작가라는 수식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자유자재로 관객을 울리고 웃기던 극작술로 근대극에 기여한 바도 크다. 작품 미적 가치는 작가의 이념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고, 통째로 역사에서 지우기보다 오히려 그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되새겨야 한다고 본 김석만 선생님은 함세덕 특유의 구성과 시적 언어를 2011년 우리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하셨다. <동승>, <무의도기행> 등 함세덕 작가의 작품을 여러 차례 연출하신 경력을 볼 때 놀랍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3. 고전의 현대화 노력
 좋은 고전이 현대에 전해주는 메시지는 때로 현재의 소리보다 오히려 그 깊이와 파워가 크다. 바로 <산적>이 가진 또 다른 강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고려의 얘기를 하고 있지만 고려인의 힘찬 기개와 더불어 원작 실러의 <군도>가 가진 18세기 질풍노도 시기 독일의 현실투쟁적인 메시지, 해방 전후 관객들을 열광케 한 함세덕의 필치까지 포괄하고 있어 현대화와 재해석이 더욱 요구될 만한 희곡이었다.
 물론 <산적>이 가진 약점들도 있다. <산적>의 희곡은 해방기에 공연된 이후 60년 넘게 잊혀져 있다가 최근에야 발굴되었기에 원고도 일부 훼손되어 있던 데다 작품 관련 기록과 정보가 미미했고, 과도기적 극작인데서 기인한 근대극 특유의 불완전한 플롯도 적절한 현재화에서는 숙제였다. 하지만 현대로 옮겨오기 힘들어 잊혀지고 있는 작품일수록 복원과 현대화의 손길이 더욱 필요할 터. 작품이 품고 있는 가치를 발현시켜 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새롭게 반추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데 의의를 실었고, 결국 이 작품이 선택되었다.



- <산적>의 제작 원칙 -
 <산적>이 선정된 이유를 모든 스태프가 공유하면서 프러덕션의 전체적인 방향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산적> 프러덕션만의 나름의 제작 원칙이란 것이 생긴 셈이었다.
 
1. 공동 창작의 원칙
 다시 말하면 ‘협력의 원칙’이다. 첫날부터 각 파트의 역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정리해주시면서 각자 어떤 역할을 하고 서로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짚어주셨다. 곧 드라마터그인 내가 미리 수집하고 정리해둔 작품 및 작가 관련 자료를 모든 스태프가 공유하게 되었고 그 정보에 따라 각색의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배우와 기획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로부터 모았다. 각색 아이디어의 취합 단계에서부터 ‘공동 창작’이라는 원칙을 중시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고려시대에 대한 연구, 연습 진행 등 모든 과정에서 ‘공유’와 ‘협력’이라는 원칙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 같은 방식은 학교 연극으로서의 교육적 특징, 큰 규모 공연의 복잡한 제작환경이라는 상황 등 여러 면에서 <산적>이 선택한 중요한 원칙이었다.

2. 배우, 연출부, 기획 등 모든 스태프들의 완벽한 작품 이해 추구
 <산적>에는 세 가지 다른 문화가 담겨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고려시대, 원작인 <군도>의 18세기 질풍노도의 시기, 그리고 함세덕이 <산적>을 쓴 사회적 배경인 해방공간 등이 그것이다. 이들 문화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또 서로의 연결고리를 찾는 이해에까지 도달해야 했는데, 협업과 공동 창작을 중시한 우리 프러덕션은 이 과정을 드라마터그나 연출가의 몫으로 던져두기보다는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연구했다.
 리허설 기간 처음 두 주 동안은 대본 리딩에 들어가지 않고 스터디만 진행했는데
파트리스 파비스 선생님이 말씀한 바 있는 ‘연습의 본질’ 중 ‘연습은 드라마터지 분석의 작업이다’라는 항목이 떠오르는 과정이었다. 드라마터지 관련 질문들에 답변해가는 과정이 계속됐는데, 연출가 이하 스태프들과 23명의 배우들 모두가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변하고,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배우들이 주가 되어 발표하도록 했고 답을 정해 두지는 않되 연출 방향에 맞게 조금씩 유도해갔다. 발표의 형식은 때로는 토론과 스피치로, 때로는 연기발표로 이루어 졌으며, 질문의 내용은 인물의 전사적 질문, 인물의 행동에 대한 이유 찾기, 시대 관련 질문, 인물의 가장 기쁜 순간, 슬픈 순간, 모멸감을 느낀 순간 등이었다.
 배우들에게는 지루하고 힘겨운 작업이었고 다른 스태프들에게는 ‘내가 왜 이걸?’ 하고 의아해 할 만한 공부였지만 이를 통해 우리 작품이 가진 가장 까다로운 부분인 ‘문화의 상호적 이해’가 가능해질 수 있었다.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른 물질들을 상호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하므로 가장 힘든 부분이었고, 각색 시에도 배우들의 대사 연기와 몸짓 연기 시에도, 무대 구현에서도 많은 고민을 해야 했던 부분이었다. 어느 수준까지 이 문화를 수용하거나 버릴 것인지에 대한 이 같은 고민의 해결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토론과 연구가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을 만큼 이 과정은 중요했다.

3. 열린 시도 - 버리고 취하기의 반복
 각색 과정에서도 리허설 기간에 배우들과 함께 블로킹을 만들 때도, 또 세부 감정 선을 만들어 갈 때도 ‘버리고 취하기’가 반복됐다. 드라마터그로서 매우 지난한 과정이었고 하나가 ‘버려질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새로운 시도를 열어둔다는 연출가의 방향성에 긍정적인 면이 있었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배우들도 연습 과정에서 힘들어 했지만 그만큼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해 더욱 분석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역시 약이 되었던 바가 컸다.   

4. 연기 - 추상에서 형상화로
 첫 번째 전체 모임은 연기워크숍이었다. 스태프까지 참여한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연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 등을 익힐 수 있었다. 특기할 만 한 점은 ‘자연의 소리 만들기’였다. 처음부터 인물 형상화에 대한 연기로 접근하기보다, 자연과 동물을 표현하고 추상적인 주제를 스스로 창조해보는 연습을 먼저 함으로써, 점점 구체화 시켜가는 연기 발전의 과정을 강조하고자 하신 듯 했다. 이렇듯 우리의 연습은 첫날부터 전체 팀원의 서로 역할에 대한 이해와 공유, 연습방식의 새로운 접근으로 시작되었다.  



- 드라마터그 작업에 있어 <산적>만의 특징 -
 이 같은 제작 과정 속에서 드라마터그도 역할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하고 보완해야 했다. 드라마터지 담당 정수진 선생님 지도 아래 드라마터그의 기본 역할을 숙지하고 갖가지 변수에 대처해 나갔다.

1. 작가 및 작품 조사와 분석
- 특징: 광범위한 조사, 공동 조사 및 분석, 과제와 토론
- 내용: 작가 함세덕 조사, <산적>의 공연사 찾기, 인물관계도 작성, 장면 및 인물 분석, 실러 <군도>와의 비교, 고려시대 조사, <산적>과 비슷한 고려의 시기 찾기, 고어정리 등

 <산적>은 해방 직후에 공연된 것이 전부인데다 당시는 모든 신문사가 폐간된 시기였기에 한국 근대연극사의 몇 줄 정보 외에는 공연관련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함세덕 작가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에 비중을 실었다. 함세덕 작가에 대한 논문과 증언, 일대기와 작품 경향, 시대 사, 평가 등에 대한 책과 자료들을 두루 읽었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이 <산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극작 경향의 변모 과정 상 <산적>은 좌익 계열로 변모하기 직전의 작품이라는 점을 확인, 작가의 메시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함세덕 선생만의 서정성과 현장성, 아름다운 우리말 대사, 역사극에 대한 관심 등 특징을 발견함으로써 작가의 작품의도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전반적인 자료 수집과 분석 후 연출 선생님과 의견을 공유했으며 <산적>의 구성구조, 전체 인물 관계도 및 감정도도 만들어갔다. 앞서 <산적> 제작의 원칙에서도 언급했듯이 자료조사와 분석이 드라마터그의 몫으로만 남겨지지는 않았다. 작품 및 인물분석은 각색 전후로 두 차례 진행되었는데 각색을 위해 드라마터그가 개인적으로 진행한 것이 첫 번째였고, 각색 이후 배우를 포함한 전 스태프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세부적으로 진행된 것이 두 번째였다. 두 번째 진행된 공동 분석 과정에서 작품의 구조와 인물 특성을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공연사 정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적>에 대한 공연사 자료나 참고할 만한 분석 자료 등이 전혀 없었기에 원작인 실러의 <군도>에 대한 탐독과 분석도 중요했다.18세기 독일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민중의 정서가 일제를 경험하고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있는 우리의 상황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러의 투쟁적이고도 예술적인 필치가 함세덕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읽혔을 것이며, 당시 우리 대중이 동시대적인 것으로 공감할 요소가 많았을 것으로 보였다.
 단, <군도>와 비교 분석해 가는 과정에서 <군도>에 못 미치는 <산적>의 작품완성도에 대한 지적이 배우들로부터 수 없이 제기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근대극의 상황과 신극의 수용 정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산적>을 읽은 우리 팀은 함세덕의 극작 수준을 함량 미달로 볼 만큼 흡입력이 떨어지고 극의 구성이 허술하다고 단정 짓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과 한국 연극사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 극의 질과 의미는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함세덕의 <산적>은 극작기술이 서양의 플롯구조로 가는 과도기에 있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서양의 극 구조에 동양적 서사 기법과 영웅 상이 섞인 번안 작으로 독일 연극 스토리의 근대 한국적 치환이라고 보면 된다. 꼭 서양의 플롯구조가 옳고 동양적인 것은 구식일 리 없고, 두 가지가 섞였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된 극작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해방 직후 혼란기는 연극인들도 술렁이고 억눌렸던 예술혼을 여기저기서 마구 뿜어내던 때였다.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대작을 내기보다는 빨리빨리 새로운 작품을 올려 대중들이 한 공간에 모이기를 바랐을 연극인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작품을 이 같은 시선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했고 당시의 관객과 사회를 반추하면 <군도> 못지 않게 <산적>도 우리에게는 큰 의의를 가지는 공연일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산적>의 극 중 배경인 고려시대에 대한 연구 역시 다양한 자료를 읽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고려시대의 두드러진 특색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는데 그 가운데‘고려 말기’의 왕조실록을 비롯해 유민, 왜구침범, 원나라 및 여진족과의 관계 등에 대한 조사가 각색과 분석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 이 같은 내용을 그룹 스터디를 통해 공유했고, 인터넷 카페에 올렸으며 디자인 팀에게 이미지를 포함한 자료를 전달했다.

 마지막으로 ‘고어정리’또한 드라마터그에게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번에 발굴되어 내 손에 처음 들어온 원고는 이야기 순서가 뒤죽박죽이었고 빠져 있는 단어나 어려운 말들이 많아 가독성이 매우 떨어졌기 때문에 1차 윤색부터 필요한 상황이었다. 윤색 시에는 지나치게 많고 어려운 한자들을 일부 수정했고 오늘날과 다른 맞춤법도 알아보기 쉽게 수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여전히 읽기 어렵다며 고어에 대한 문제를 호소했고, 나는 작품 자체에 더 손을 대기보다는 각 단어에 각주를 다는 방법을 택하여 ‘각색 전 참고 대본’을 다시 나누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고어사전’이라는 것도 만들어 모두와 공유했는데, 여기에는 1945년 무렵에 쓰였을 법 한 생소한 단어를 비롯해 고려의 행정 및 군사 용어 등도 포함돼 있다. 고어를 정리하는 작업이 순탄치는 않았다. 국어 대사전, 고어사전, 북한어휘 사전 등을 뒤적이며 뜻을 하나 씩 찾아갔는데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말들이 많아 이 작업만 사나흘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몇 한자어는 연변 출신의 배우 마학봉 씨가 중국어사전을 통해 뜻을 알아다 주기도 했다. 이 작업만으로도 1945년과 오늘날 사이의 시대 거리감을 크게 느낄 수 있었으며, 고려시대와 해방공간의 시기를 이해하고 동시대성을 찾는 작업이 얼마나 힘겹고 더딜지 예감할 수 있었다.

2. 각색
- 특징: 아이디어 공동 수집, 열린 시도로 버리고 취하기 반복
- 내용: “중심 기준: 1. 압축  2. 현재성  3. 캐릭터 강화, 조연비중 강화”
 연출 선생님이 위와 같은 중심 기준을 잡아주셨고, 우리 프러덕션의 원칙인 ‘공동창작’의 원칙에 따라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각색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물론 각색 담당자는 연출과 드라마터그인 나였고, 집필은 주로 혼자 진행했다.
 집필 시에는 원작의 가치와 특징을 고려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함세덕 선생이 무대 발화를 염두에 두고 배우의 연기를 생각하며 극작했던 작가임을 상기하여, 나 또한 배우의 발화와 현대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고어를 수정했다. 원전보다 더 가독성이 있어야 했다.  또한, 파비스 선생님의‘연극번역의 기호학적 설명’과 마찬가지로 각색에서도 고전이거나 오래된 것일수록 분석과 구체화를 중시하고, 시각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접근으로 텍스트를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각색 결과를 놓고 반성하자면, 아쉽게도 최종 공연본은 각색 기준 중 2번을 살려내지 못했다. 공동각색이라는 접근이 가진 약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1차 각색안 수집에서는 애초에 1번과 3번 기준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으므로 문제되지 않았으나 2차, 3차를 지나 각색의 수정이 수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점점 기준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연출 선생님은 앞서 밝힌 제작과정의 특징대로 ‘열린 시도’라는 원칙에 따라 여러 가지 시도를 다양하게 해보고 그 중 좋은 것은 최종적으로 찾아나가길 원하셨고, 이에 따라 나는‘들어내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시도에 장점도 많았지만, 처음의 방향성을 잃어 극의 흐름이 목표한 바와 다르게 변질되고 각색자, 미술팀, 배우 등의 구성원이 작업에 혼란을 겪어야 하는 등 문제점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각색 결과물도 영향을 받아 흔들리게 된 것 같다. 
 처음 해본 ‘각색’이라는 작업이 내겐 버거웠고 부담스러웠지만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드라마터그에게 필요한 책과 정보를 주시며 이끌어주신 연출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단, 완전한 일임이 아닌 공동 작업 방식 속에서 각색자로서 나의 위치와 업무의 선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던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3. 배우지도
- 특징 및 내용: 연출의 보조자로서 배우들과 소통

1) 독회 및 분석 단계
독회 및 분석 단계에서는 드라마터그를 필두로 팀을 나누어 장면 및 인물 분석을 위한 토론을 진행했다. 4월 말까지 계속됐는데 연출 선생님이 주제를 던져주시거나 과제를 내주시면 그에 대한 답을 배우들 스스로가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연출가나 드라마터그가 정답을 알려주거나 먼저 설명하는 것은 지양했으며 배우들의 얘기를 다 듣고, 방향을 잡아줄 만한 질문만 계속 던져줌으로써 스스로 연출의 의도를 찾아가도록 노력했다.
2) 장면 구성 단계
연출가가 거칠게 블로킹을 잡아나가고 분주하게 배우들을 이끌어가는 한 편, 나는 짬짬이 배우들의 질문과 고민을 들었으며 간단한 것은 바로 답해주고, 복잡한 부분은 정리하여 이메일로 전해주었다.
3) 세부 감정연기 단계
 블로킹은 잡혔으나 세부감정연기가 아쉬워진 가운데, 블로킹을 익혀가는 진행은 연출가가 맡고 부족한 감정연기는 연출가의 언질에 따라 드라마터그가 개인 면담 식으로 지도해나갔다. 주로 그 대사나 행동이 왜 있어야 하는지, 행동과 대사에 대한 이유를 확인해주며 그에 따른 감정의 깊이를 변화해줄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연습하도록 조언했다.
4) 최종 리허설 단계
 공연날짜가 다가올수록, 배우와 조연출 외 스태프들, 연출가 모두 예민해지고 지쳐갔다. 따라서 공연 닷새 전쯤부터는 격려와 칭찬으로 힘을 북돋고자 했다. 여전히 부족하게 여겨지는 장면들이 보였지만 배우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은 자제하고 연출선생님과 얘기했다.

4. 프로그램
- 특징 : 제작과정을 자세히 소개, 배우들과 직접 대화한 내용을 기록, 생소한 고려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간략 tip 제공 등
- 드라마터그가 맡은 내용: 연출의 글, 드라마터그의 글, 공연 TIP, 연습사진

1) 연출의 글 - '함세덕과 연출의 대화 : 김석만 연출, 함세덕 선생을 깨우다'
 연출 선생님이 '함세덕과 연출가의 대화' 형식에 동감하시며 대충의 구성을 보내보라고 하셨기에 거칠게 작성하여 연출 선생님께 드렸고 이것을 보완, 수정하시어 되돌려주셨다. 이것을 다시 분량과 어투 등을 고려하여 마무리 했다.
 연출의 글에서는 연출소개와 함께 주로 '작가 함세덕에 대한 소개와 가치' 등을 다루고자 했는데, 필수내용을 추려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대화 형식이었기 때문에 압축된 글, 일목요연한 글을 쓰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2) 드라마터그의 글 - '드라마터그와 엄의 대화 : 산적 허우정정'
 <산적>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제작과정을 담은 글이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드라마터그의 입장에서 본 <산적>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실제 배우들과 대화를 진행하고 녹음하여 정리했다. 연출가나 이론가의 시선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학생들인 배우, 스태프의 실제 고민과 공부한 내용, 작품에 대한 생각 등을 그대로 담고자 노력한 것이었다. 
 이 같은 시도를 한 이유는, 먼저 <산적>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관객들에게 좀더 실감나게 그 내용과 특성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실러의 <군도>와 함세덕의 <산적>의 관계, <군도>의 시기인 '질풍노도의 시대'와 <산적>이 쓰인 시기인 '해방공간', <산적>의 극 중 배경인 '고려시대' 등 복잡하고도 낯선 작품의 배경들에 대한 소개를 쉽게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복잡한 배경 요소들 가운데 우리들은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고민 끝에 어떤 방향으로 준비하게 되었는지 등을 소개함으로써 공연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예를 들면, 원본이 가진 플롯 상의 결함, 일관되지 않은 듯한 인물의 행동변화 등 당시 우리 연극들의 과도기적 극작술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또, '신파 그대로의 재현' 등 '근대 우리 연극을 최대한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자'는 공연 방향성에 대한 언급을 덧붙임으로써 관객들의 오해와 의문에 답하고자 했다.   이 같은 내용이 지나치게 설명적인 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배우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았다. 제작팀원 모두의 고민이라는 상징성이 더욱 잘 드러나도록 대화 형식을 시도한 것인데, 이 역시 정리 과정이 쉽지 않았다. 배우들의 의견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표출되고 대화 시간도 오래 걸려, 걸러내고 정리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공연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졌고 배우들의 고민과 속내를 더욱 깊이 알게 되어 도움이 되기도 했다.
 3) 공연 관련 TIP - ‘산적 구구절절’
 앞서 여러 차례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고려, 해방 직후, 독일의 질풍노도의 시대 등 여러 배경이 섞여 있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고려시대의 행정, 군사조직 용어나 벼슬품계,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함세덕이 사용한 해방 직후의 어투와 단어들, 낯선 무기나 춤, 노래 등이 그러한 예이다. 예를 들어, '대광대감 어른의 표기대장군 시절, 동계에 계실 때 모셨던 장졸이라나?‘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 '대광대감', '표기대장군', '동계', '장졸'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관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같이 작품 이해를 어렵게 하는 부분이나 알려주면 재미있는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모아 '산적 구구절절'이라는 이름으로 꾸몄다.
 4) 연습사진
 원래 드라마터그가 맡을 부분은 아니나, 기획 쪽에서 찍어둔 사진의 양과 질에 모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할 여력이 없다고 밝혀 직접 나서서 보완하게 되었다. 기획팀이 1차 편집본에 실은 사진들은 모두 같은 장면에 같은 배우가 출연한 4 장의 사진들이었는데, 프로그램 북 두 페이지를 할애한 상황에서 4장만, 그것도 같은 장면만 싣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로 촬영할 것을 권고했지만 시간 상 여력이 없음을 밝혀왔기에 급히 측근 사진사를 동원해 사진촬영에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효율적인 촬영을 위해 미리 프로그램에 실을 사진 수와 편집 디자인, 원하는 장면과 등장 배우들을 정해두고 전체 런을 돌고 있을 때 한 장면 씩 찍어나갔다. 이 날 찍은 사진들은 바로 보정작업을 거쳐 기획에게 전달했으며, 다음 날 바로 프로그램 인쇄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프로그램에 실을 연습사진 촬영에 드라마터그가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품의 주요 장면과 배우들 연기의 중요 포인트를 알고 있는 드라마터그가 프로그램에 실을 만한 좋은 장면과 디자인 등을 기획팀에 조언하고, 연습 중에 살아 있는 사진을 부지런히 찍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프로그램 속 ‘연습사진’을 볼 때 작품이 더 잘 드러나고, 배우들의 연습상황이 실감나게 잘 살아 있는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반성과 과제 -
 드라마터그 입장에서 전해줄 수 있는 <산적>의 제작과정을 두드러진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정리하며 돌이켜보니 반성할 거리들도 많이 발견된다. 주요 몇 가지만 싣겠다.

 먼저, 작품의 규모와 내용이 힘겨워 학생들이 단기간에 소화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5막이라는 길이, 전쟁과 궁궐이라는 큰 스케일의 배경, 고려시대라는 다소 생소한 시대의 귀족 이야기, 더욱 생소한 한국 근대의 희곡, 최근 발굴되어 일부 훼손된 상태의 원고, 1945년 초연 이후 첫 공연. 이 모든 것들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분명 큰 정신적 부담이었다. 게다가 무술과 고전무용 및 노래까지 준비돼야 했기에 육체적 부담까지 작용했다. 내용 상으로도 기술 상으로도 버거웠던 이 작품은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에는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 작품 선정 시나 연출 시에 좀 더 현실적 부분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둘째, 고전의 현대화에 있어 새로운 드라마터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앞서 각색의 중요한 기준으로 밝히기도 했던 ‘현재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현대 관객을 의식하고 현재 공연되는 바의 의의를 잘 드러내는 각색이어야 하고 미장센이어야 할 것 같다. 셰익스피어 고전들이 지금까지 널리 공연되고 있지만 ‘같은’ 셰익스피어는 없다. 매번 새롭게 해석되고 연출되어 오늘의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산적>도 그래야 했다. 그러나 드라마터그로서 우리는 일면 진부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드라마터그는 고전을 대함에 있어 더 많은 준비와 광범위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이른 바 'neo-dramaturgie'에 대한 연구가 절실한 것 같다. 한국에는 아직 제대로 된 ‘네오 드라마투르기’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니,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새로운 드라마투르기’에서도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오늘날의 흐름에 맞는 고전 드라마터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작 시스템 상의 과제이다.
 드라마터그의 위상 문제부터 짚어보겠다. 드라마터그로서 작업하면서 혼란을 겪어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구성원들이 드라마터그를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명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거나, 구성원마다 일의 범주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소통 시 힘든 부분이 있었고 그에 따라 내 작업에도 차질이 생기곤 했다. 프러덕션 팀이 꾸려지면 드라마터그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그 범위와 명확한 내용을 초반에 구성원들과 공유하여 역할에 대한 혼돈을 막아야 할 것 같다. 이는 드라마터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일부를 위해 그 역할을 설명해주는 좋은 기회도 될 것이며, 팀 내 자신의 역할을 확고히 함과 동시에 보다 원활한 진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팀원들 또한 드라마터그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어 프러덕션 내 안정된 역할 수행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한예종 레퍼터리 연극’의 정체성 문제 또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간 ‘레퍼터리 연극’을 표방해온 일련의 작품들에서 그 어떤 일관성이나 방향성을 읽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레퍼터리 연극의 체계화를 꾀할 수는 없을까. 극장에서 일관되고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상임 드라마터그, 혹은 예술 감독의 지휘를 필요로 하듯이 연극원에도 레퍼터리 연극의 상임 드라마터그 격의 기획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정 기간의 레퍼터리 작품들을 체계화된 기획에 따라 올릴 수 있다면 한 학기 대표 공연들이 좀 더 그 가치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연극 제작 시 공연시설 측 및 진행 인력의 협조도 더 원활해 져야 할 것 같다. 공연 기간 중 놀랐던 부분이 밤 열 시가 되면 극장 측에서 소등한 후 문을 잠가버린다는 것이었다. 지하 분장실과 무대 뒤 통로 등도 정각 열 시 이후에는 이용할 수가 없다. 예술학교에서 학교 대표 레퍼터리 연극 공연 기간에 극장 운영을 융통성 없이 진행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공연의 경우 밤 열 시가 되어야 공연이 끝났는데, 그러면 배우들은 그 두꺼운 분장과 겹겹이 입은 전통의상에서 탈출하는 데만도 최소 30 분이 걸리고, 스태프들도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또, 공연이 끝난 후 팀 전원이 모여 공연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회의할 시간은 주어져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극장 측에서는 공연 종료 후 10~20분 정도가 지나면 문을 모두 잠그고 소등해버려 공연 마무리에 애를 먹었었다. 무대 제작, 조명 등 기타 기술적 부분에서도 좀 더 학생들의 고충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돕는 ‘우리 편’이 되어주었다면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외에도 영상촬영이나 극장리허설 진행 시 여러 가지 차질을 겪으며 사전에 진행인력들이 더 꼼꼼히 조율하고 소통했어야 함을 절감했고 서로 양보하고 협조할 때에 마지막까지 성공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반성과 과제에 대해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쉬움만 토로한 것 같다. 하지만, 글의 서두에 밝혔듯이 자부심을 갖게 되는 우리 ‘산적들’만의 노력과 결실 역시 많았다. 작품 선택의 의미에서부터 능동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게 한 우리들만의 제작 원칙, 그에 기반한 각 파트의 더 분주한 노력까지 모두 새로운 도전이었고 보람된 작업이었다. 간편하게 그럴 듯한 무대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해 힘든 길을 돌아 종착지까지 도달한 우리들의 레퍼터리 공연 <산적>은 누가 뭐래도 박수 받을 만 했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 수까지 역대 최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불화도 없이 아끼는 마음으로 공연을 마친 화기애애한 팀이었으며, ‘힘들다’며 한 숨 짓고 ‘술 당긴다’며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던 우리들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산적>의 동력을 되새길 수 있었다. 새로운 산적들의 더 보완된 <산적>이 또 한 번 탄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