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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연이야기/리뷰

방문기 X (by 강화정)

X=K (to me)

<방문기 K>



1. 입장 = 죽음의 경계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유난히 많이 걸은 날이다. 그것두 갑자기 쏟아진 비까지 주루룩 맞고서.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어휴. 죽겠네.'

잠시 후 진짜 죽음으로 갈지도 모르고 ㅎ.


매표소 앞을 향해 계단을 내려간다.
발에 검은 쓰레기 봉지들이 차인다.
'이건 또 뭐야-'

방호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나른다.
따라가보니 객석 입구 앞을 쓰레기더미로 막아두었다.
'쓰레기장 컨셉? ㅎㅎ'

다른 연극과 달리 8시 정각에 입장시킨 극장 측.
방호복 맨이 안내한다. 이렇게.

"죽음에 가까우신 분들은 줄 앞쪽에 서주십시오."

 여자:  "자살충동 느껴본 사람이면 해당되나요?"
 다른 여자: "난 나이가 많아서 제일 가까운 것 같은데 맞나요?"


별다른 대답 없이 이제 죽음의 세계로 초대한다며 마음껏 사진도 찍으라는 미스터 방호복의 안내말과 함께 관객들은 들어간다.

난 상관 없는 척 멀찌감치 있다가 '죽음에 가까운' 줄 뒤에 스윽 서서 들어간다. 




2. 방문 = 죽음의 세계

젠장. 카메라를 두고 왔군. 아이폰으로 대충이라도 찍는다.
이 신기한 죽음의 세계를.

무대는 쓰레기더미로 가득하다.  창고, 아니 폐가 같다. 마치 죽음에 가까운 육신처럼.


곧 배우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거울에 반사되는 빛들로 배우 뿐만아니라 내 눈도 시리다.
나도 그들 안에 있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그들의 몸은 자기 의지와는 멀어진 듯 괴상스레 자유롭다.

내 옆에 앉은 새마을 모자 할아버지는 쑥스럽게 웃는다. 저게 뭐냐며.
저어기 앞에 할머니는 못보겠다는 듯 고개를 숙여버린다. 
ㅎ 괴상하긴 하다.

하지만, 다시 깨닫는다.
이 곳은 괴기스러움이 일상인 곳.
죽음이 일상인 '죽음이 가까운 세계-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죽음의 세계'가 바로 내가 있는 이 곳이다.

죽음에 대한 환상을 강화정 연출은 가혹하게 상상해낸다.
김기덕 감독 영화가 떠오른다. 우리 사회에 사실은 일어나고 있지만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잊고 싶어 하는 더럽고 불쾌한 것들을 끄집어내는 그의 영화는 인정은 하지만 즐겁지는 않다.
강화정의 죽음세계도 그렇군. 아. 아프다.




죽어가지만, 아직도 인간적 욕망이 들끓는 그들을 위해 극 속의 호스피스는 고통으로 헐떡거리는 입술을 키스로 잠재우고, 애무함으로 죽음 앞에 웃음까지도 선사한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을 잠재우며 도달한 사후의 세계.

난 지옥이 아닌 천국이길 바랐고, 무섭기보단 평화롭길 바랐다.
뭔가 새로운 희망이 있는 곳, 얼마 전 본 연극에서 환자들이 꿈꾼 '인어도시'처럼.

하지만 내가 있는 이 곳의 사후의 세계는 인간의 세상과 별다름이 없다.
괴기스럽고, 혼란스럽고, 사랑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단, 모든 것이 현세와 같지만 오로지 시간은 없다. 그래서 더욱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곳.



3. 나오면서 = 삶의 경계

아. 어지럽다.
배우들을 보자면 자막이 휘리릭 지나고, 자막을 읽자니 천장 저어기 너머에서 외계인 같은 소리, 여성의 외침소리가 들려와 귀를 열어야 한다.
보느라, 듣느라, 읽느라...
사실 내가 뭘 본 건지, 들은 건지, 냄새 맡은 건지.... 혼돈의 세계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죽음 세계인가 보다.

괴상한 몸체를 가진 생명체들, 무릎을 구부릴 수가 없는 영혼들,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몸짓 속에 어색해 하는 그들.
그리고 그 혼돈 속 한가운데... 나.


나는 오늘도 '죽겠네 죽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늘어가는 잔주름을 보며 확 당겨낼 방법 없나 고민하던 차다.

누구나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생각 없이 죽음을 입에 담고
순리를 거슬러 시간을 되돌리려 하기보다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본다.


강화정의 '죽음'은 보기는 신기하지만 너무 어렵다.
하지만,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나만의 깨달음은 있다.


'사람들은 ...... 라고들...... 그 일이 있은...... 에...... 라는 걸......다.'



며칠 전 생을 달리 한
내 어린 날의 '나만의 오빠' 박용하, 그가 오늘 더욱 가슴 시리다.



 - Made in Koana -






PS> 모 잡지를 보다 강화정의 연출 소견을 읽게 되었다.
      "대부분 대사를 분명히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연출하거나 배우 역시도 그렇게 훈련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대사는
하되, 들리지 않게 하라는 요구를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배우들이 심하게 짜증을 냈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표현한 대로, 내가 그 날 느낀대로,
       죽음의 세계는 정말 그런 걸까.
       듣지만 들리지 않는, 보지만 무엇인지 모를, 읽지만 이해 못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