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그리고 12, ...그리고 13의 혼돈 >
이 작품을 보고나서 든 생각은 '뭐지?' 였다. 아는 척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특별한 연출 없이 천조각만 대충 깔아놓고 배우들이 왔다 갔다 설명조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졸리기까지 했다. 이해가 안 가고 볼 거리가 없으니 지루해지고.
유명한 브룩 연출의 작품들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실험들이었다는데 노장의 메시지는 차분한 성서 낭독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처럼 연극을 공부하거나, 이 분야에 종사하거나 교수... 암튼 피터브룩을 익히 알고 앉은 듯 보였다. 아는 척, 지적인 척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극장을 나오면서,, '이 사람들 모두 이해한 걸까?' '나만 바본가?' 싶었다.
'이제 좀 올라왔겠지-'
며칠 후 인터넷을 뒤적였다. 블로거들 글을 좀 보려고. 예상대로 많은 블로거들과 문화부 기자들이 글을 올렸네. 흠.
다들 찬사를 보냈고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면서.
'나만 바본가?' 다시 주눅든다.
작품 설명이 그치만 좀 단순하다. 프로그램 북이나 언론지면에 소개될 때 이미 설명된 글들의 모사랄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그 때 찾아낸 이 인터뷰.
티에노 역을 맡은 배우, 마크람 J 쿠리와의 인터뷰 글이다.
그는 대본을 받아들고 이해가 되지 않아 피터브룩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말하고 있다. 이에 브룩은, 몇 주건 몇 년이건 기다리겠으니 계속 읽어보라고 했다고.
그럼 그렇지. 이제야 나만 '바보가 아님'을 입증했군, 휴.
연극사의 신화라는 피터브룩의 80인생의 결정체인 이 작품은 삶의 진리를 말한다. 어떤 다른 설명의 장치 없이, 배우의 입과 몸짓으로.
이걸 어찌 한 번의 턱 굄과 끄덕임으로 다 이해할 수 있겠느뇨.
배우가 이해하고 체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듯 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몇 가지 뜻모를 찌릿함을 준 말들,,
예를 들면
알리 곰미 : 티에노, 백인들 똥도 우리 것처럼 까매요!
친구들 : 거기다 엄청난 양의 종이랑 섞여 있어요!
티에노 보카: 백인등 똥도 우리 것처럼 까맣다! 종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종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느냐?
... 큰 나무를 잘라서 아주 오랜 공정을 거친 후에 그걸고 별의별 것을 다 만든다. 책, 백인들이
읽는 큰 종잇장. 그걸 신문이라고 한단다. 그 사람들은 그거 없인 못살아. 그걸 밑 닦는데 사용
하지. 그 사람들 피부는 약해서 우리처럼 돌로 문지르고 씻을 수가 없어. 만약 그랬다간 연약한
피부가 시뻘개질 테니까. 그래서 종이를 이용하는 거야.
티에노 보카 : 이맘. 자네 실수한 것 같네. 괜히 다들 모이라 했네. 아직 해지기 한참 전인데......
이맘 :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너무 아는 척 말게!
티에노 보카 : 대단한 걸 아는 척 하는 게 아니네...... 그냥 시계를 봤을 뿐. 그게 정확하니까.
이맘 : 양교도들의 기계로 시간을 본다고? 그런 불경한 짓을! 이제 곧 저녁이야!
(바로 이 순간, 햇살이 이맘의 얼굴에 쏟아진다....)
티에노 보카 : 신께서 친절하게 자네들 눈을 열어주시는구먼. 나도 자네들만큼 무식하다네. 난 단지 시계를
봤을 뿐, 칭찬은 가당치 않네. ......
티에노 보카 : 너 (알라신이 주신) 순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느냐?
암쿠렐 : 아뇨, 티에노.
티에노 보카 : 나이 들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나이 들어 다리도 못 들고, 눈은 침침해지고, 이가 다빠져
서 신에게 돌아가면 쓰겠니? 신도 보기 좋은 꽃을 좋아하신단다. 아마두, 이생에서 네가 받게
될 몫이 많건 적건, 결국엔 다 두고 가야 한다. 인생은 '순리대로' 사는 거야. 오늘 너를 이슬람
으로 개종시켰으면 한다.
.......
그게 다가 아니다. 진정한 인간이 되려면 네 스스로 완전히 이해하고 결정해야 한다. .......
티에노 보카 : ... 비방은 전염병과 같다. 프랑스 행정부의 좋은 점만 취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지
나쳐라..... 순수함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을 발견하는 건......
뒷마당에서도, 시장통에서도, 사령관의 사무실에서도, 심지어 돼지 이빨에 난 구멍에서도 가
능하다.
암쿠렐 : ... '신은 무엇입니까?'
티에노 보카 : 신!... 신!...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다.
.....
티에노 보카 :.......왜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냐? 일단 그의 존재를 확신할 경우, 자신의 존재마저
부인하는 꼴이 된다. 인간의 존재는 신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신은 물질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다. 허나,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다고 해
서 그것이 부재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 역시 상기해야 한다.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
이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으로 담고 말로 형언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신 자체가 아니라 네가
인지한 방식의 신으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신은 정의할 수 있는 영역 밖에 계시다. .......
티에노 보카 : 세상엔 세 가지 진리가 있다. 나의 진리,너의 진리, 그리고 진정한 진리. 진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중심에 있을 뿐이야. 그것은 순수한 빛이고, 그 상징은 만월이다. 만월이 3일이나
계속된 것을 보았느냐? 세상에 어둠이 없어진 것을? 태양은 하늘 반대편에 달의 얼굴이 나타
나는 걸 보기 전에는 지지 않는다. 달은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지지 않아. 믿을 수 없이 아름다
운 순간이다. 나의 진리는, 너의 진리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진리의 작은 파편일 뿐이야. 한 쪽
에 여러 개의 초승달들이 떠 있고, 다른 쪽엔 완벽한 원형의 만월이 있다. 대부분 우리가 다투
게 되는 건 우리 말만 듣기 때분이다. 우리가 조각달들이 되어 서로 등을 돌리는 형상이지. 다
툼이 커질 수록 떨어진 거리도 멀어진다. 처음엔 둘을 붙여놓으려고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
식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서 두 개의 초승달이 얼굴을 마주하고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다가 마
침내 둘이 만나 대진리의 완벽한 원형을 이루게 해야 해. 그것만이 화합의 방법이란다. ......
티에노 보카 : 하루는 스승님 주변에 나비가 모여들었습니다. 멀리서 환한 불길이 보였고, 나비들은 다들
무슨 일인가 했지요. 첫번째 나비가 날아가 보고는 조용히 돌아와 말했습니다. "불길이 너무
뜨거워 가까이 갈 수가 없어요." 스승님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설명은 별로 소용이 없구
나." 두 번째 나비가 날아가 불길 가까이까지 갔다가 날개가 탔습니다. 그는 돌아와 이 일을 말
씀드렸습니다. 스승님은 머리를 흔들며 "그 설명 역시 별 소용이 없구나!" 세 번째 나비가 날아
가 사랑에 취해 자신을 불길에 던지고는 사라졌습니다. "이 놈은 제대로 이해를 했군!" 하고 스
승님이 말했습니다. "그 녀석만이 제대로 아는 거야. 그 걸로 됐어."
이런 말들이 왜 찌릿한 건지 곱씹어봐야 겠다.
그리고 대본을 언젠가 다시 열었을 때는 새로운 깨달음이 다가와 있길 바라야지. 암쿠렐이 시간이 흘러흘러 티에노를 다시 찾고,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그의 심장을 여는 평화를 얻게 됐듯이.
신은, 진리는
인간을 참말로 당황스럽게 만드는구나.
< 피터브룩 >
1925년 런던 출생의 피터브룩은 로열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연극 혁신의 역사를 일구어낸 인물이다. 1962년의 작품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전형성을 깼고, <US>는 베트남전에 대한 대항과 반발의 의미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즉흥연기와 브레히트 식 훈련법, 베트남 스님들의 초청 강의 등 새로운 방법으로 연극에 접근했다. 1970년, 기념비적인 작품 <한여름밤의 꿈>이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연극이 존재하는 한 회자될 작품'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읮거인 연출가가 만든 작품' 등 세계적 칭송을 받는다. 1985년에는 아비뇽에서 14km 떨어진 채석장에서 9시간 동안 공연한 <마하바라타>로 그의 새로운 상상력을 쏟아냈다.
그는 80세가 넘은 오늘도 바쁘다. 올 11월, 오페라 <마술피리>를 준비 중이다.
< 작품 개요 >
어느 날 아프리카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의 수도승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열한번의 기도를 반복한 후에 스승의 축복기도로 기도회를 마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열한번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스승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스승이 도착하자 수도승들은 늦게 온 스승이 무안하지 않도록 하려고 일부러 기도가 아직 안 끝난 것처럼 한번 더 기도문을 외었다. 그러자 스승은 축복기도를 해주었고 기도회를 무사히 마쳤다.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열한번의 기도를 마쳤는데도 스승의 마무리 기도가 이어지지 않자 수도승들은 스승이 기도를 더 하기를 기다리는가 싶어 한번 더 기도를 했다. 곧 스승의 축복기도가 이어졌다. 그들은 예전처럼 기도를 열한번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제부터는 열두번을 하는 것이 옳은지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나 스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었다.
이후 기도를 원래대로 열한번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열두번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파가 갈렸고 그 다툼은 점점 커져 부족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반목과 질시가 이어지자 열두번 기도하는 파의 지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한번 기도하는 파의 지도자를 찾아갔다. 그들은 조용히 기도를 하고 묵상을 하고 때때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내 열두번 기도파의 지도자는 열한번 기도파의 지도자가 자기보다 더 훌륭하고 원숙하고 지혜로우므로 앞으로는 그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가 종족을 배반했다고 여겨 그를 배척했다. 그는 마침내 쓸쓸히 죽어갔다. 아프리카 수피즘의 지도자인 티에노 보카의 이야기다.
그는 또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비들이 사는 마을에 그동안 보지 못하던 아주 밝은 불빛이 보였다. 어떤 나비가 그 불꽃이 무엇인지 보러 갔다가 너무 뜨거워서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스승이 그 설명은 충분치 못하다고 했다. 다른 나비가 다시 불빛을 보러 갔다가 날개를 좀 태우고 겨우 살아 돌아왔다. 스승은 그것도 충분치 못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마리의 나비가 다시 불빛을 보러 갔다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 불에 반해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타죽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스승이 그 나비야말로 아름다움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으며 비로소 불빛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1. 공연이야기/극장정보] - 주요극장1 - LG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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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고나서 든 생각은 '뭐지?' 였다. 아는 척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특별한 연출 없이 천조각만 대충 깔아놓고 배우들이 왔다 갔다 설명조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졸리기까지 했다. 이해가 안 가고 볼 거리가 없으니 지루해지고.
유명한 브룩 연출의 작품들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실험들이었다는데 노장의 메시지는 차분한 성서 낭독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처럼 연극을 공부하거나, 이 분야에 종사하거나 교수... 암튼 피터브룩을 익히 알고 앉은 듯 보였다. 아는 척, 지적인 척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극장을 나오면서,, '이 사람들 모두 이해한 걸까?' '나만 바본가?' 싶었다.
'이제 좀 올라왔겠지-'
며칠 후 인터넷을 뒤적였다. 블로거들 글을 좀 보려고. 예상대로 많은 블로거들과 문화부 기자들이 글을 올렸네. 흠.
다들 찬사를 보냈고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면서.
'나만 바본가?' 다시 주눅든다.
작품 설명이 그치만 좀 단순하다. 프로그램 북이나 언론지면에 소개될 때 이미 설명된 글들의 모사랄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그 때 찾아낸 이 인터뷰.
티에노 역을 맡은 배우, 마크람 J 쿠리와의 인터뷰 글이다.
그는 대본을 받아들고 이해가 되지 않아 피터브룩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말하고 있다. 이에 브룩은, 몇 주건 몇 년이건 기다리겠으니 계속 읽어보라고 했다고.
그럼 그렇지. 이제야 나만 '바보가 아님'을 입증했군, 휴.
연극사의 신화라는 피터브룩의 80인생의 결정체인 이 작품은 삶의 진리를 말한다. 어떤 다른 설명의 장치 없이, 배우의 입과 몸짓으로.
이걸 어찌 한 번의 턱 굄과 끄덕임으로 다 이해할 수 있겠느뇨.
배우가 이해하고 체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듯 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몇 가지 뜻모를 찌릿함을 준 말들,,
예를 들면
알리 곰미 : 티에노, 백인들 똥도 우리 것처럼 까매요!
친구들 : 거기다 엄청난 양의 종이랑 섞여 있어요!
티에노 보카: 백인등 똥도 우리 것처럼 까맣다! 종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종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느냐?
... 큰 나무를 잘라서 아주 오랜 공정을 거친 후에 그걸고 별의별 것을 다 만든다. 책, 백인들이
읽는 큰 종잇장. 그걸 신문이라고 한단다. 그 사람들은 그거 없인 못살아. 그걸 밑 닦는데 사용
하지. 그 사람들 피부는 약해서 우리처럼 돌로 문지르고 씻을 수가 없어. 만약 그랬다간 연약한
피부가 시뻘개질 테니까. 그래서 종이를 이용하는 거야.
티에노 보카 : 이맘. 자네 실수한 것 같네. 괜히 다들 모이라 했네. 아직 해지기 한참 전인데......
이맘 :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너무 아는 척 말게!
티에노 보카 : 대단한 걸 아는 척 하는 게 아니네...... 그냥 시계를 봤을 뿐. 그게 정확하니까.
이맘 : 양교도들의 기계로 시간을 본다고? 그런 불경한 짓을! 이제 곧 저녁이야!
(바로 이 순간, 햇살이 이맘의 얼굴에 쏟아진다....)
티에노 보카 : 신께서 친절하게 자네들 눈을 열어주시는구먼. 나도 자네들만큼 무식하다네. 난 단지 시계를
봤을 뿐, 칭찬은 가당치 않네. ......
티에노 보카 : 너 (알라신이 주신) 순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느냐?
암쿠렐 : 아뇨, 티에노.
티에노 보카 : 나이 들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나이 들어 다리도 못 들고, 눈은 침침해지고, 이가 다빠져
서 신에게 돌아가면 쓰겠니? 신도 보기 좋은 꽃을 좋아하신단다. 아마두, 이생에서 네가 받게
될 몫이 많건 적건, 결국엔 다 두고 가야 한다. 인생은 '순리대로' 사는 거야. 오늘 너를 이슬람
으로 개종시켰으면 한다.
.......
그게 다가 아니다. 진정한 인간이 되려면 네 스스로 완전히 이해하고 결정해야 한다. .......
티에노 보카 : ... 비방은 전염병과 같다. 프랑스 행정부의 좋은 점만 취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지
나쳐라..... 순수함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을 발견하는 건......
뒷마당에서도, 시장통에서도, 사령관의 사무실에서도, 심지어 돼지 이빨에 난 구멍에서도 가
능하다.
암쿠렐 : ... '신은 무엇입니까?'
티에노 보카 : 신!... 신!...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다.
.....
티에노 보카 :.......왜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냐? 일단 그의 존재를 확신할 경우, 자신의 존재마저
부인하는 꼴이 된다. 인간의 존재는 신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신은 물질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다. 허나,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다고 해
서 그것이 부재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 역시 상기해야 한다.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
이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으로 담고 말로 형언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신 자체가 아니라 네가
인지한 방식의 신으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신은 정의할 수 있는 영역 밖에 계시다. .......
티에노 보카 : 세상엔 세 가지 진리가 있다. 나의 진리,너의 진리, 그리고 진정한 진리. 진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중심에 있을 뿐이야. 그것은 순수한 빛이고, 그 상징은 만월이다. 만월이 3일이나
계속된 것을 보았느냐? 세상에 어둠이 없어진 것을? 태양은 하늘 반대편에 달의 얼굴이 나타
나는 걸 보기 전에는 지지 않는다. 달은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지지 않아. 믿을 수 없이 아름다
운 순간이다. 나의 진리는, 너의 진리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진리의 작은 파편일 뿐이야. 한 쪽
에 여러 개의 초승달들이 떠 있고, 다른 쪽엔 완벽한 원형의 만월이 있다. 대부분 우리가 다투
게 되는 건 우리 말만 듣기 때분이다. 우리가 조각달들이 되어 서로 등을 돌리는 형상이지. 다
툼이 커질 수록 떨어진 거리도 멀어진다. 처음엔 둘을 붙여놓으려고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
식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서 두 개의 초승달이 얼굴을 마주하고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다가 마
침내 둘이 만나 대진리의 완벽한 원형을 이루게 해야 해. 그것만이 화합의 방법이란다. ......
티에노 보카 : 하루는 스승님 주변에 나비가 모여들었습니다. 멀리서 환한 불길이 보였고, 나비들은 다들
무슨 일인가 했지요. 첫번째 나비가 날아가 보고는 조용히 돌아와 말했습니다. "불길이 너무
뜨거워 가까이 갈 수가 없어요." 스승님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설명은 별로 소용이 없구
나." 두 번째 나비가 날아가 불길 가까이까지 갔다가 날개가 탔습니다. 그는 돌아와 이 일을 말
씀드렸습니다. 스승님은 머리를 흔들며 "그 설명 역시 별 소용이 없구나!" 세 번째 나비가 날아
가 사랑에 취해 자신을 불길에 던지고는 사라졌습니다. "이 놈은 제대로 이해를 했군!" 하고 스
승님이 말했습니다. "그 녀석만이 제대로 아는 거야. 그 걸로 됐어."
이런 말들이 왜 찌릿한 건지 곱씹어봐야 겠다.
그리고 대본을 언젠가 다시 열었을 때는 새로운 깨달음이 다가와 있길 바라야지. 암쿠렐이 시간이 흘러흘러 티에노를 다시 찾고,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그의 심장을 여는 평화를 얻게 됐듯이.
신은, 진리는
인간을 참말로 당황스럽게 만드는구나.
< 피터브룩 >
1925년 런던 출생의 피터브룩은 로열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연극 혁신의 역사를 일구어낸 인물이다. 1962년의 작품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전형성을 깼고, <US>는 베트남전에 대한 대항과 반발의 의미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즉흥연기와 브레히트 식 훈련법, 베트남 스님들의 초청 강의 등 새로운 방법으로 연극에 접근했다. 1970년, 기념비적인 작품 <한여름밤의 꿈>이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연극이 존재하는 한 회자될 작품'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읮거인 연출가가 만든 작품' 등 세계적 칭송을 받는다. 1985년에는 아비뇽에서 14km 떨어진 채석장에서 9시간 동안 공연한 <마하바라타>로 그의 새로운 상상력을 쏟아냈다.
그는 80세가 넘은 오늘도 바쁘다. 올 11월, 오페라 <마술피리>를 준비 중이다.
< 작품 개요 >
어느 날 아프리카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의 수도승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열한번의 기도를 반복한 후에 스승의 축복기도로 기도회를 마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열한번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스승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스승이 도착하자 수도승들은 늦게 온 스승이 무안하지 않도록 하려고 일부러 기도가 아직 안 끝난 것처럼 한번 더 기도문을 외었다. 그러자 스승은 축복기도를 해주었고 기도회를 무사히 마쳤다.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열한번의 기도를 마쳤는데도 스승의 마무리 기도가 이어지지 않자 수도승들은 스승이 기도를 더 하기를 기다리는가 싶어 한번 더 기도를 했다. 곧 스승의 축복기도가 이어졌다. 그들은 예전처럼 기도를 열한번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제부터는 열두번을 하는 것이 옳은지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나 스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었다.
이후 기도를 원래대로 열한번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열두번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파가 갈렸고 그 다툼은 점점 커져 부족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반목과 질시가 이어지자 열두번 기도하는 파의 지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한번 기도하는 파의 지도자를 찾아갔다. 그들은 조용히 기도를 하고 묵상을 하고 때때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내 열두번 기도파의 지도자는 열한번 기도파의 지도자가 자기보다 더 훌륭하고 원숙하고 지혜로우므로 앞으로는 그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가 종족을 배반했다고 여겨 그를 배척했다. 그는 마침내 쓸쓸히 죽어갔다. 아프리카 수피즘의 지도자인 티에노 보카의 이야기다.
그는 또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비들이 사는 마을에 그동안 보지 못하던 아주 밝은 불빛이 보였다. 어떤 나비가 그 불꽃이 무엇인지 보러 갔다가 너무 뜨거워서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스승이 그 설명은 충분치 못하다고 했다. 다른 나비가 다시 불빛을 보러 갔다가 날개를 좀 태우고 겨우 살아 돌아왔다. 스승은 그것도 충분치 못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마리의 나비가 다시 불빛을 보러 갔다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 불에 반해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타죽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스승이 그 나비야말로 아름다움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으며 비로소 불빛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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