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저 밀양 여름연극축제에 대해~
모든 생활이 컴퓨터 앞에서 나홀로 가능한 시대지만, 월드컵을 보라-. 사람들은 여전히 모이고 싶어하고 축제에 목마르다. 디지털시대에도 아날로그는 필요하고, 아날로그의 대표격 '연극'이 축제를 연다면 참으로 잘 맞을 것 같다.
연극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밀양연극촌에서 지난 목요일 (7/22) 부터 열려 8/1까지 계속된다.
처음엔 '축제에 관객이 없다'는 둥 위치와 프로그램의 부족 등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연극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관객이 찾아오고 있고, 밀양시 등에서 예산을 지원해주기 시작하면서 밀양연극제는 올해 영국과 독일, 일본 등 해외 3개국을 포함해 30개 극단이 참가하는 국제적 공연 축제로 자리잡았다.
2 올해 프로그램은?
< 공식 사이트 참조 : http://www.stt1986.com/STT_NEW/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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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아나의 연극여행~
천둥번개 가득한 폭우가 쏟아지던 23일, 마지막 휴양지의 주인공이 '상상력'을 찾아 폭풍우를 뚫고 무작정 차를 몰았듯 나도 그랬다. 거침 없는 빗줄기가 한 치 앞도 가려버리고 눈 앞에 떨어지는 번개만이 어두운 낮 하늘의 빛이 되던 그 때, 그 화가가 '새 신발'을 찾아 무작정 떠났듯 나도 차를 몰아 떠나버렸다.
여차저차 덜컹덜컹 충주를 지나자 서서히 맑아지고 상쾌해졌다.
하얀 뭉게구름까지 선사해주는 반가운 공기를 창문을 열어제치고 빨아들인다.
점점 달아오는 듯한 열기를 느낄 무렵, 밀양에 도착했다.
처음 발을 딛은 곳은 밀양역.
올 여름들어 제대로 들어보는 매미소리가 쨍쨍거리고, 하늘의 빛도 쨍쨍거리는 곳이었다.
역사이지만, 버스와 택시, 스용차가 간간히 지나고 몇몇 사람들이 타박타박 지나는 것 외에 참으로 조용했다.
연극축제를 알리는 광고판이 그래도 축제의 느낌을 전하고 있다.
'준피아노 세트장'에서 전도연이 머리 자르던 장면도 떠올리고
영남루에서 땀도 씻어내고...
이리저리 바지런히 다니다보니 해도 기웃기웃... 연극할 시간이 되어간다.
일찌감치 연극촌으로 떠났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부북면으로 향하는 드라이브길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혼자하는 여행이라 이 순간이 소중했고, 오랜만에 차 없이 논밭 내음 풍기는 좁은 도로를 달리니 짜릿했다.
조용한 곳에 조용히, - 정말 조용히 - 자리잡은 밀양연극촌.
사진과 글로만 접해본 이 곳은 상상한 대로 '촌' '마을' 같다.
마지막 휴양지의 그 화가가 찾은 '아무도 몰라 마을' 같은 판타지를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구 바로 앞, 옆은 온통 연밭이다. 연꽃단지가 주변을 감싸고 있어 공연시간을 기다리며 둘러볼 수 있게 돼 있었다. 맘에 든다.
조용함 가운데 축제임을 알려주는 신호는 기획 공연 '오구' 속 강부자 선생님이 하늘을 나르고 있는 벌룬과 입구에 앉은 두 세 젊은 청년들~.
일찍 와서 그런가-, 금요일 오후라 그런가-,
넓지 않은 주차장이지만 주차하기도 어렵지 않고 (저녁 때가 되니 만차, 주말엔 주차장이 붐벼 도로에 댄다더니 그럴 것도 같았다.) 북적대지 않은 분위기가 나홀로 여행객으로선 좋았다.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이번에 개관한 '성벽극장'과 그 앞을 채운 '천막 안내소'.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사진으로만 보던 설레는 건물과 간판이 보인다.
'밀양 연극촌'.
앗싸- 드디어 왔다~!
실감이 난다.
약도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윤대성 선생님과 이윤택 선생님의 사택을 먼저 찾았다.
마음으로 반가움의 인사를 건넨다.
사택 쪽에서 바라본 성벽극장 측면이다. 오늘 밤 열시에 공연될 '뮤지컬 이순신'을 앞두고 소품과 의상들이 무대위에도 올려져 있었다. 준비과정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
( 어제 알았지만 아쉽게 낙뢰위험으로 이순신 공연이 취소됐다는데... 튼튼하게 극장보수공사도 하고 이참에 더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
축제기간 열리는 전시회 장 안에서는 10년 역사의 기록들과, 세계 각국 축제에 참여한 작품 포스터들이 전시돼 있었다. 한 켠에선 공연에 쓰인 의상과 탈춤이 전시돼 있어 이윤택 선생과 배우들의 연습 모습을 절로 상상하게 되었다. 판매하고 있는 탈들도 흥미롭고, 이윤택 선생님이 쓰신 책들도 판매하고 있어 시간떼우기 딱 좋았더랬다. (결국 책 세 권을 질러버렸다.... 시중가보다 싸기에.. 흠흠.)
4. 고아나가 본 '춤판'
연극을 봤어도 좋았을 것이지만, 밀양의 대표 춤꾼도 만나보고 싶고 평소 접하지 않았던 무용의 새로운 감각을 충전해가고 싶기도 했다.
총 4 편으로 나뉘어진 '춤판'은
김남진의 <두통>,
남영호의 <한국여자>
하용부의 <영무>
케이트 플랫의 <소울플레이>
이상 네 작품이었다.
남영호의 <한국여자>는 음악이 아닌 독일어로 들리는 시어의 운율을 따라 검은 현대적 고전의상을 펄럭인 춤, 서사적 느낌의 '승무'였다. 솔직히 춤에 문외한이고 전통예술에 대한 정서가 익숙하지 않아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새로움, 지루하기까지 한 나의 무지함을 발견하는 자리이고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물음에 답해볼 수 있는 자리였기에 내겐 의미 있었다.
무형문화재 제 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인 하용부의 무대는 양반춤, 범부춤, 북춤의 호흡과 몸짓을 정리한 자리였고, 존경의 박수가 심어졌다.
동유럽 시골지방에서 사람이 죽고나서 묻기 전에 시적으로 행해진 조의문화가 '소울플레이'라고 한다. 장례식을 치르는 날까지 계속되는 그 소울플레이가 내 앞에서 펼쳐질 때, 무대 속 청년처럼 나도 휴대폰, 지갑, 차표를 찾는 강박증을 느꼈다. 내 옆의 누군가, 그리고 내 안의 영혼을 찾아보게 하는 어렴풋한 찌릿함이 있었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김남진의 <두통>. 부산 출신 무용수이자 벨기에 등지에서 활약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쇼킹하고 친근했다. 무용이지만 연극과도 가까웠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 했고 웃음도 유발하는 듯 했다.
충격과 공포의 효과로 '내 말 좀 들어달라' '날 좀 봐달라' 재촉하는 듯 했다. 유미주의가 아니라 담백하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시각화 한 느낌이 나와 코드가 맞았다. 아이티 지진을 모티브로 창작됐다는 이 작품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깊숙한 고통의 이유에 대해 묻고 있다. 나약하게 고통을 부르짖지만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인간들을 표현했다. 공감도 가고 쇼킹한 표현에 신선한 자극도 됐다.
다만, 작품을 보고 '씻김'과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두통'을 얻고 가는 이 느낌, 이건 왜 일까.
해소가 됐으면 좋으련만, 뭔가 덜 닦고 나온 것 같다.. 그래서 '두통'인가...
더 많은 공연을 보고 굳어진 심장을 뜨겁게 녹이고 싶었으나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밀양연극촌은 좋은 작품이 참 많았다. 이미 일찌감치 매진된 '햄릿' 같은 이윤택 공연의 대표 레퍼토리나 '오구', '이순신'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참가한 초청작들, 대학생들의 젊은 기운을 엿볼 수 있는 도전적인 대학극전 등도 무시 못할 실력으로 보인다.
달랑 하나만 보고 온 단출한 1일 여행이었지만
출발할 때의 소망대로 나는 '낡은 모자'를 벗고 '새 신발'을 신었다.
이 뜨거운 여름날
매미 소리 듣고 땡볕을 에어컨 바람 쐬듯 달갑게 맞아가며 몸을 풀고 있는 배우들이며
어설프지만 풋풋하게 안내하는 자원봉사 학생들
이장님 같은 정겨운 분위기의 감독님 혹은 스태프들은
이기적인 땀으로는 불가능한 미소와 진지함이 배어 있었다.
삶을 가치있게 쓰는 예술가들의 땀을 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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