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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연이야기/리뷰

2014년 여름, 대작뮤지컬 러시

(시사in 2014 8/9 게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98


2014년 여름, 대작 뮤지컬 러시 

 

공연 장르 중 뮤지컬이 유독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이유는 보다 더욱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연극, 특히 비극의 인물처럼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지 않다. 뮤지컬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꿈은 이루어지고 사랑은 성립된다. 정의가 승리한다. 따라서 뮤지컬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보지만 생각이 혼란스럽지는 않다. 이처럼 의심이 없는 안정적인 세상이 바로 뮤지컬이다.

여름이다. 힘든 일상에다 후텁지근한 더위까지 겹쳐 더욱 지칠 때 이 분명한 세상으로 들어와 휴식하는 것도 좋은 피서 선택이 될 것이다.

 

높아지는 기온만큼 시원한 휴식을 찾게 되는 8,미드썸머에 어울리는 뮤지컬은 무엇일까?

 

 

 

여름시즌은 또 하나의 성수기로 부각될 만큼 많은 공연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형 뮤지컬들의 찬란한 향연으로 관객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조정석, 송창의 주연의 <블러드브라더스>가 여성관객들의 지지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살리에르>도 창작물로 올려져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조로> <캣츠>도 여름 시즌을 공략해 몇 년만에 다시 한국무대에 오르며, 유럽뮤지컬의 꾸준한 흥행작  <레베카> 9월에 다시 돌아온다. 영화에 겨울왕국이 있다면, 뮤지컬에는 <위키드>가 있다. <위키드>는 지난해 11월 오픈 이후 흔들림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을 휩쓴 <킹키부츠>CJ E&M 제작으로 곧 한국에 상륙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소개할 꼭 봐야 할 여름 작품들이 있다. 신작으로는 <프리실라>, <드라큘라>, <더 데빌>, 믿음직한 스테디셀러로는 <브로드웨이42번가> <시카고>를 추천한다.

 



Show Time! <프리실라>



먼저, 짙게 화장한 남자배우들의 파격적인 포스터가 길거리에 깔리면서 호기심을 모은 작품,  <프리실라>. <프리실라>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거쳐 한국에 상륙한 드래그퀸 소재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프리실라라는 별명을 붙인 낡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드래그퀸 3명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지만 점차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성숙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믹하고 유쾌하지만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의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기에 희화화의 개그코드는 아니며, 꿈을 꾸는 누구에게나 대입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성하, 조권, 이지훈, 마이클 리 등 익숙한 이름의 배우들이 포진해 이름에 걸맞은 기량을 뽐내고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는 히트 팝 음악으로 무장해 공연 내내 귀가 즐겁고 지루할 틈이 없다.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여장을 하고 여자보다 더 고운 자태를 뽐낼 때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 작품이 사랑 받는 첫번째 요소를 꼽으라면 의외로 음악이다. ‘Like a Virgin’, ‘It’s raining man’ 등 친숙한 팝의 향연이 연신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비주얼이 먼저 보이지만 결국은 음악으로 즐거운, 눈과 귀가 호강하는 유쾌한 뮤지컬이다.   

 


드라큘라의 사랑, <드라큘라>



글로벌한 여름 전문 캐릭터 드라큘라가 한국 뮤지컬에도 등장했다.

브램 스토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드라큘라>는 한국이 사랑하는 뮤지컬 메이커인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육체를 소유한 채 40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한 여인만을 사랑하는 '낭만적'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 그의 사랑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는 여인 미나, 드라큘라를 제거하려는 반 헬싱 교수 등 세 인물이 극을 이끌어 간다. 결론을 말하자면, 공포스러운 흡혈귀 이야기라기보다 드라큘라의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200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작품이지만 이번 한국 초연은 음악과 대본만 가져온 ‘논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이어서 국내 제작진의 독자적인 노력이 많이 투여됐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네 개의 턴테이블 회전무대도 새롭고, 새로 투입된 넘버도 있으며  대본과 구성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는 붉은 머리로 돌아온 막강 티켓파워 김준수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도 전석매진 신화를 이루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한편, 불안정한 저음처리와  앳된 이미지가 역할과 맞지 않는다는 등 부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다만, 드라큘라의 판타지적인 특징은 김준수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지고 있으며, 캐릭터 연구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후문에 걸맞은 넘치는 에너지가 무대에서 느껴지는 점은 긍정적이다.

드라큘라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흥미진진한 전개를 원했다면 식상할 수 있다. 유쾌한 쇼를 기대하고 가면 지루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섹시하게 분장한 아이돌의 러브스토리 이야기 정도로 접근하는 게 맞다. <드라큘라>는 화려한 무대, 한국적 멜로드라마, 웅장한 음악이 매혹적인 소재와 결합한 뮤지컬로, 그야말로 최근 한국뮤지컬 흥행 법칙을 고스란히 담아낸 정석 같은 뮤지컬이다.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더 데빌>



아직 공연 전인, 다수 뮤지컬 팬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작품도 있다. 바로 괴테의 희곡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3인극 록 뮤지컬 <더 데빌>이다.

극은, 악마와의 거래라는 기본 설정만 가져오고 스토리와 캐릭터는 새롭게 만들어냈다. 20세기 뉴욕 증권가로 배경을 옮겨인간의 욕망과 치명적인 유혹에 관한 이야기를 강렬하고 폭발적인 록사운드로 풀었다. 블랙 먼데이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주식 브로커 존 파우스트에게 X는 유혹적인 제안을 해오고 그와의 거래는 존을 점점 타락의 길로 몰아간다. ‘헤드윅등에서 콘서트 뮤지컬의 한 획을 그은 바 있는 이지나 연출의 창작 록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늘 새로운 소재를 들여와 신선한 연출을 선보여온 그녀이기에 이번에는 어떤 결과물을 보일 지 기대되는 바다. 또한,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불식시키는 가창력과 세심한 연기력을 소유한 마이클 리’, 최근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한 핫한 뮤지컬 스타 한지상등의 출연으로 더욱 기대감을 높인다. 마이클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무대에서 주로 활약했던 배우로 한국에서는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 <벽을 뚫는 남자> <노트르담 드 파리> 등에서 차별화된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한지상 <넥스트투노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지난 해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고루 받으며 명실상부한 차세대 톱배우로 꼽히는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 두 배우의 호연이 이어질 지 주목된다. <더 데빌>8 22일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 브로드웨이42번가



블록버스터급 신작들의 파상공세에도 흔들림 없이 관객들의 시선을 받는 믿음직한 구관들이 있다. 그 중 첫번째 작이 <브로드웨이 42번가>이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정통 쇼 뮤지컬이자 바로 화끈한 탭댄스의 향연이다.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한 소녀가 스타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화려한 무대와 다이내믹한 탭 댄스, 스윙과 그루브가 넘치는 재즈풍의 노래, 주옥 같은 뮤지컬 넘버와 감동적인 스토리로 전세계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롱런 히트작이다.

간혹 스토리가 진부하고 플롯이 성글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지만 그건 이 작품의 매력을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국내에서 1996년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대중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뭘까? “SHOW!” 이것만으로 충분한 쇼 뮤지컬이다. 더운 날 피서지 삼아 들어간 공연장에서 복잡한 전개의 스릴러나 눈물 빼는 멜로보다는 유쾌한 쇼를 원하는 관객들이 절대 다수일 터.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이 생소한 분들의 입문작으로도 좋다. 주인공 한명 한명보다는 전체 앙상블과 군무를 눈여겨 봐야 할 작품이며, 따라서 너무 앞자리보다는 오히려 무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뒷자리가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남경주, 홍지민, 박해미 등 노련한 중견그룹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어 믿음직하며,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싱글앨범을 내기도 한 배우 김영호가 연출가 마쉬 역할을 맡아 기대 이상의 연기를 펼친다. 파워풀한 에너지의 탭군무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다면 추천한다. 

 


 

섹시한 재즈, 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이번이 올해로 국내공연 10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더불어 서울공연 기준, 지금까지 모두 여름에 공연됐다. 그만큼 <시카고>는 여름과 잘 어울리는 저력있는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춤·노래. 뮤지컬의 3박자가 완벽한, 흔치 않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유명 배우였으나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들어온 벨마는 교도소 간수마마의 도움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지만, 신참 죄수 록시가 자신의 인기를 넘어서자 그녀를 질투한다. 유능한 변호사빌리의 도움으로 일약 스타가 된 록시는 화려한 언론의 조명에 취하지만, 두 사람은 곧 혼자서는 모든 것을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All that Jazz’ 등 세련된 재즈선율이 압도적인 넘버들은 박칼린의 지휘와 연주로 한층 더 농염하게 연주된다. 특히, 가수에 이어 뮤지컬이라는 딱 맞는 옷을 찾은 배우 아이비, 초연부터 한 무대도 빼놓지 않고 <시카고>에 출연하는 최정원이 주연으로 단독 캐스팅 되어 농염한 연기의 진수를 펼칠 예정. 그 외에도 전수경, 이종혁 등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띈다. 세월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은 믿음직한 작품을 더욱 탄탄한 캐스트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로 봤더라도 무대로 보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여성배우들의 섹시한 춤과 노래, 끈적끈적한 재즈 음악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이 작품을 보다 가까이서 보는 것이 영리할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지 않았나. 편치 않은 뮤지컬 티켓값을 고려하면 신작 모험보다,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8. 휴가를 떠나시는 분들도 많지만, 불안정한 일상이 짧은 휴가마저 허락지 않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에게 공연 피서를 권유 드린다. 뮤지컬이라는 유쾌하고도 안정적인 세상에서 잠시 휴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