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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연이야기/상식

토월회에 대하여

박승희의 극단활동 - 토월회

< 토월회 이전의 극단 알고가기 >

* 동학혁명 이후 민중의 근대의식과 지각의 상승, 3.1운동에서 절정. 이 시기에 민중의 근대의식이 문화예술에서도 나타남

* 신파극단 : 일본식 신파에 절은 연극인(신극좌,취성좌,혁신단 지속)과 인텔리 신파 연극인(예술협회,민중극단) 등 으로 양분됨
 -> 감각이 낡은 극단들은 유랑극단화 되어 밀려나고, 개량신파극단 몇 개만 명맥 유지

* 현철 등 선구 연극인들의 활동

* 20년대 초 - 알아야 산다는 각성으로 교육열 상승, 해외유학생 급증
  -> 유학생 및 경성고학생들의 극운동, 극단활동
        -극예술협회 : 방학을 이용한 순회강연회, 순회극단. 동경에서 조직.
        -동우회순회극단 : 동경유학생 30여 명
        -경성고학생 갈돕회
        -송경학우회 : 동경에 유학하고 있던 개성학생들의 모임
        -형설회순회극단 : 동경고학생회가 조직

* 1920년대초 이들의 연극의 의의
-신파극만 있던 시대에 이단과 같은 존재, 혁명적 연극운동
-소극장 운동의 싹 (소극장을 갖고 활동하진 않았으나 반상업주의,리얼리즘 정신 면에서)
-배일사상과 순수성 지켜냄 (애국운동)



< 토월회土月會 >

우리나라 근대연극사에 매우 중요한 이름
김재철,‘종래의 ‘우물쭈물극’을 일소하고 극다운 극을 한 극단으로서 반도 극계의 광명이었다’

1. 출발
1922년10월, 도쿄유학생 박승희, 김팔봉,김복진,이서구,박승목,김을한,이제창 등 7 명이 조직한 문예서클
이후 연학년, 이수창, 여류시인 김명순, 임노월도 가담
-> 이때 이름을 토월회라 지음
   (‘현실에 발을 딛고 섰되, 이상은 명월 같이 높아야 한다’는 뜻. 김팔봉이 제시한 명칭)
동우회의 영향으로 방학동안의 귀국활동(연극활동)을 계획
여배우 이월화, 이정수 등 확보

1923.7. 조선극장에서 창립공연
- 박승희 ‘길식’, 버나드 쇼 ‘그 남자가 여자의 남편에게 엇더케 거짓말을 하였나’, 체홉 ‘곰’ 등
실패 (대사 잊어버림. 이월화의 구찌다데 애드리브, 화가나 박승희는 퇴장해버림, 관객야유)

2. 첫번째 분열
연극에 뜻 없던 김팔봉, 연학년, 이수창 등 탈퇴 -> 멤버 보완해 자기중심체제로 바꿈
제2회 공연
- 톨스토이 ‘부활’, 마이아.펠스타 ‘알트.하이델벨크’, 스트린드베리 ‘채귀’ 등
- 일본 못지 않은 무대장치 but 연기는 뒤떨어짐
내부 진통 -> 창립멤버들 모두 탈퇴
   ->동인제에서 박승희 회장제로 바꾸고 전문극단인 근대극 운동단체로 전환.
      문예부,미술부,경리부,출연부,악단,무용부로 나눔

*박승희를 짝사랑하던 이월화도 탈퇴
  -> 조선배우학교를 다닌 복혜숙을 전속으로 임대
처음으로 단원들에게 월급 지급
여배우만 월급 주었음 (이유: 대부분 기생출신이라 기생수입 보장을 약속했었기 때문)

*연구생 제도 시도
광무대 전속 계약
판소리,무용 등을 많이 활용한 가무극 스타일 자주.
배우들의 스타화 - 대중의 스타, 대중의 유행도 좌우
창작,번안,각색 - 박승희 혼자
극 구성 - 인정극2막,비극2막,희극2막

3. 두번째 분열
신인배우- 무보수로 혹사 -> 농성, 9개항의 요구조건 내걺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운영, 수익의 균등배분, 배우들의 후생복지, 건강한 신극으로의 복귀 등)
- 간부진은 묵살, 신인농성자들은 굴복하고 토월회 떠남. 이후 안일,타성의 길로 걸어감
이 내분은 주목 받음 : 순수한 신극을 하지 않고 영리만 추구해 생긴 자체 반란, 1인독주에 대한 제동의 뜻

4. 세번째 분열
경영부실로 늘 적자
지방순회공연, 인기에 편승해 통속화
-> 주연극 배우들 탈퇴
-> 극단의 공신력 약화, 제기 불능상태 ->휴면 상태

5. 재건
-3년 후 연출가 박진과 재건
-재기공연 - 창작극 ‘아리랑고개’ 대히트

* 광주학생사건 직후(1929.11) - 공연 중 신간회 간부 김무삼이 무대에 올라 삐라 날림
-> 연극검열 강화
     -민요 ‘아리랑’ 금지곡
     -레퍼토리는 ‘경희극’
-> 토월회 타락
     -막간극,악극, 아예 유랑극단으로 변신
->1931년 경, 창립 9년 만에 사라짐.
    1932.2. 태양극장으로 개칭

6. 의의
-당시 신파연극계에 자극, 본격 신극의 싹을 틔움. 30년대 연극의 개화를 마련
-한 두번에 그친 학생극들에 비해 근대적 사실주의극을 표방하는 전문극단으로까지 발전, 탁월한 예술이념이나 자질 없이 오로지 열정으로 바친 선구적 극단
-한국 신극 사상 최고인 총 87회의 공연 횟수를 기록
-소극장운동의 소명을 뿌리내리지는 못했지만 그 시발을 알림      
             

박정양 총리대신의 아들 박승희는 육체,정신,재산,가정까지 연극에 바치고
만년에 가난과 고독 속에 단칸방에서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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