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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연이야기/상식

앤드류 로이드 웨버


뉴욕 맨해튼 매저스틱 극장. 1월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부는 브로드웨이 47번가 좁은 길 한쪽에는 길게 줄을 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날은 <오페라의 유령>이 첫 공연을 하는 날이다. 단 한 차례 시연회를 갖고 광고를 했을 뿐인데, 이미 47번가 편도 1차선 도로는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날 매진 사례는 이후 20년 동안 이어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 신화의 시작일 뿐이었다. 영국이 낳은 불세출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런던 허 마제스티 극장에서 초연한 후 전 세계에서 1억 명이 관람했고 사상 최고의 인기 뮤지컬이 됐다. 영국에서만 허 매저스티 극장에서 2003년까지 7천회의 공연을 기록했고, 미국 브로드웨이 매저스틱 극장에서는 지금도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순위 2위에 올라 있다. 물론 1위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1981년 발표한 뮤지컬 <캣츠(Cats)>다. 그러나 <캣츠>는 2000년 9월 10일을 마지막으로 18년간 이어진 7천485회 브로드웨이 공연을 마쳤다. 이에 따라 2009년이 되면 <오페라의 유령>이 공식적으로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1위에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인다. 브로드웨이에서 20년째 장기 공연해온 <오페라의 유령>이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장 오래 공연되는 뮤지컬이 되는 것이다. 

 

< 오페라의 유령> 공식 홈페이지는 공연기록을 다음과 같이 자랑하고 있다. ‘전세계 20개 국가 110개 도시에서 6만5천회 이상 공연’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2개 부문, 토니 어워드 7개 부문 수상을 비롯 전세계 주요 시상식에서 50개 이상 주요 상 석권’ ‘매 공연에 230벌의 의상, 14명의 의상 담당자, 120번의 오토메이션 효과, 22개의 장면 전환, 281개의 촛불, 250킬로그램의 드라이아이스 사용’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브로드웨이판 제작에는 당대 최고급들이 참여했다. 연출을 맡은 해롤드 프린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연출가. <에비타>와 레너드 번스타인의 <캔들> 등의 명작을 초연 연출했다. 안무를 맡은 질리언 린은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한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 <캣츠> 안무를 성공시켰다. 영국 최고의 공연관련 상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가 질리언 린을 위해서 새로운 상을 제정했을 정도다.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의 추리소설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1861년 파리 오페라 극장을 무대로 파리의 어두운 하수구와 아름다운 극장에서 펼쳐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음악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그려진 작품이다. 사고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 에릭은 프리마 돈나 크리스틴을 짝사랑한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사고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에릭은 가면을 쓰고 크리스틴을 납치한다. 그러나 에릭은 크리스틴과 라울의 숭고한 사랑을 확인하고 크리스틴을 놓아주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에는 각 작품마다 대표적인 러브송이 하나씩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서 세계적으로 히트한 노래 ‘나는 그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겠네(I don't know how to love him)’가 그랬다. <캣츠>에서는 ‘메모리(Memory)’가 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에릭이 수십개의 촛불 속에서 부르는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와 크리스틴과 라울의 노래 ‘그대에게서 바라는 것은 오직 사랑뿐(All I ask of you)’이 대표 러브송이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음악을 담은 앨범은 영국 팝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전세계에서 2백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1948년 3월 22일 영국 켄싱턴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모두 음악인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작곡가이며 런던 음악대학 이사이자 로열 음악대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피아노 교사, 동생 줄리안 로이드 웨버는 첼로 연주자였다. 동생 줄리안과 함께 음악가정에서 자란 웨버는 어릴 때부터 프렌치 호른,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연주할 수 있었다. 불과 7살에 작곡을 해 천재성을 보였던 웨버는 어린 시절 연극배우였던 숙모의 영향으로 <마이 페어 레이디>, <지지> 등의 공연을 보면서 뮤지컬에 특히 관심을 보이게 된다.

 

웨스트민스트 스쿨을 졸업한 웨버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나 곧 진로를 바꾸어 아버지가 교수로 있던 로열 음악대학으로 편입하여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다. 클래식 음악을 배운 웨버가 작곡한 첫 작품은 음악극이었다. 1965년 17세였던 웨버는 절친한 친구였던 팀 라이스의 가사에 곡을 붙인 음악극 ‘우리들의 유사함(The Like of You)’을 만든다. 이 작품은 이후 황금콤비로 활약했던 팀 라이스와의 첫 작업이기도 하고, 이후 이들이 펼쳤던 일련의 빅히트 뮤지컬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했다. 신 앙심이 깊었던 웨버는 1968년 런던 콜렛 코트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학예회용 작품을 만든다. 팀 라이스가 가사를 쓴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은 성서에 등장하는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를 다룬 팝 칸타타 형식의 작품이다. 15분짜리로 만들어진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은 잡지 <런던 선데이 타임스>에서 호평을 해 웨스트민스트 센트럴 홀에서 공연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은 이후 1976년 2막짜리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져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오르고 1982년에는 토니상 후보작이 되기도 한다.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으로 자신감을 얻은 웨버와 라이스는 ’뉴 벤처 씨트리칼 매니지먼트(New Venture Theatrical Management)'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웨버와 라이스는 1969년 싱글 앨범을 발표하고 이 앨범을 바탕으로 1970년 최초의 빅히트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제작한다. 웨버가 불과 22세이던 때다. 그리스도 최후의 7일간을 극화한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두 장의 앨범으로 먼저 발매되어 미국에서만 총 150만장 이상이 팔렸다. 제작자 로버트 스틱우드에 의해 뮤지컬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토니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웨버는 1972년 24살의 나이에 옥스퍼드 재학 시절 만났던 사라와 결혼을 한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웨버와 라이스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이후 음악적 견해 차이로 따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이스와 헤어지고 희극 작가 앨런 아이크번과 함께 1975년에 만든 작품 <지브스(Jeeves)>는 불과 38회만 공연하고 참담한 실패를 한다. 다시 라이스와 팀을 이룬 웨버는 1976년 <에비타(Evita)>를 발표하면서 인기를 되찾는다. <에비타>는 당대 최고의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에 의해 뮤지컬로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 작품은 토니상에서 작품, 작곡, 작사, 감독 등 7개 부문상을 휩쓸고, 뉴욕비평가협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또 1980년에는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비타>는 웨버와 라이스가 팀을 이뤄 만들어낸 마지막 작품이 된다.

 

 

라이스와 결별한 웨버는 ‘리얼리 유스풀 그룹(Really Useful Group)'를 설립하고 1981년 뮤지컬 <캣츠>를 발표하면서 화려하게 브로드웨이로 복귀한다. <캣츠>는 T. S. 엘리오트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의 시 14편에 맞춰 웨버가 곡을 붙이고 캐머룬 매킨토시가 연출했다. 특히 <캣츠>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곡으로 알려진 ’메모리'는 이후 무려 170여 명의 가수들이 600회 이상 녹음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캣츠>는 토니상 7개 부문을 수상하고 그래미상도 두 차례나 수상했다. 1982년에는 단막극 뮤지컬 ‘송 앤 댄스(Song & Dance)를 제작하고 1984년에는 아들과의 기차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Starlight Express)'를 발표한다.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던 웨버는 <캣츠>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두 번째 부인 사라 브라이트먼(Sarah Brightman)을 만난다. 웨버의 첫 번째, 두 번째 부인의 이름은 모두 사라다. 웨버는 <캣츠>에서 무명의 합창단원으로 일했던 사라 브라이트먼과 1984년 결혼한다. 이후 1986년 웨버는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평가 받는 <오페라의 유령>을 발표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웨버가 부인 사라 브라이트먼을 위해 만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사라 브라이트먼은 대중 가수로 성공하게 되고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독특한 음색을 지닌 여가수로 자리잡게 된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최절정기를 맞은 웨버의 음악은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9년에 <사랑의 이모저모(Aspect of Love)>, 1993년에 <선셋대로(Sunset Boulevard)>, 1997년에 <휘슬 다운 더 윈드(Whistle Down the Wind)> 2000년에 <뷰티풀 게임(The Beautiful Game)> 2004년에는 <우먼 인 화이트(Woman in White)>를 연이어 발표하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한다. 지금까지 모두 13편의 뮤지컬을 만든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1992년 영국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2003년 당시 영화개봉에 맞춰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문학세계사, 다락원, 지경사, 최근 펭귄클래식 판을 번역한 웅진 씽크빅까지, 국내에는 거의 7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오페라의 유령>이 출간돼 있다. 물론 저작권이 소멸됐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영한대역판에서 청소년용, 어린이용, 오디오북까지 다양한 출판물이 시장에 나와 있다. 이중 흥미로운 저작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이후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의 유령2>(동방미디어)다.


 

<자칼의 날>, <오데사 파일> 등의 소설로 널리 알려진 스릴러 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가 썼다. 원제가 <맨해튼의 유령>인 이 소설은 가스통 르루의 소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에릭이 뉴욕 맨하탄 오페라 하우스에 다시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펼쳐졌던 지고지순한 사랑은 뉴욕으로 와서, 자본의 노예가 된 미국식 사랑으로 변한다. 유럽의 낭만적 사랑은 프레데릭 포사이드에 의해 미국식 초기 자본주의의 이해를 반영한 탐욕적인 사랑으로 바뀐다. 프레데릭 포사이드 특유의 스피디한 문장과 추리 기법으로 버무려진 소설과 가스통 르루의 원작을 같이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예전, 네이버 대문에 실린 배문성 시인/출판 평론가 님의 글을 가져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