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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이야기/방송자료

내 고향(인 줄 알았던) 영도다리, 근대 부산의 흔적


‘니~ 영도다리에서 주워왔데이.’
이런 말, 부산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릴 때 좀 들어봤을걸? ㅎㅎ

그 말 듣고는 진짠 줄 알고 밤새 목놓아 울고,
친엄마 찾겠노라고 영도다리에서 어슬렁거리고…

ㅋ 느넨 안 그랬어?
아… ㅎㅎ
부산사람에겐 영도.. 여러 추억으로, 조금은 특별한 장소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영도, 그 곳에 가면>
  방송일 : 2009-08-28   




이 날 방송의 테마 ‘영도’.
1930년대에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와 이어진 섬.

이 곳은 아직도 우리의 추억을 고스란..히, 많이 간직해주고 있어.
언제라도 돌아와 찾아주길 바라는 고향처럼. 엄마 품처럼.
그 덕에 영도는 더 북적이는 곳으로 떠나간 젊은이들을 대신해
많은 예술가들이 채워주고 있어.


1.    사진작가 송경숙

곳곳에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어 이 곳을 찾는다고.
현관문을 열어두고 담 없이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은 요즘 찾기 힘든 보물이다.

사실 그렇다. 영도는 산중턱부터 꼭대기까지 주욱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사진 찍기로는 재미나다. 보물찾기처럼.
특히나 골목 끝에 다다르면 영도만의 바다가 펼쳐진다.
골목과 집, 그리고 바다… 아름답다…

그녀는 영도 사람들의 소탈함을 담는다. 그 순박함과.


2.    소설가 윤진상

40 년동안 영도에 살면서 글을 썼다. 거센 파도에 맞서는 섬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영도 사람들의 모습을 소설로 풀어냈다.

삶의 제일 막장과 같은 곳이었다고… 옛날 한국 현실을, 그 삶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던 곳, 고단한 사람들의 삶을 안아준 넉넉한 섬.

영도의 역사를 안다면 이해할 만할 것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 영도니까. 전쟁때문에 흩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 그들은 영도다리에서 기약 없이 가족을 기다렸다…
피난민들의 이정표, ‘영도다리’.

다리 아래엔 ‘점바치 골목’이 즐비했다. 아직 있긴 하지만 명맥만 잇고 있지…
서민들의 애환이 잘 묻어나던 골목이었을 거야. 시대의 아픔도 대변해주고.



3.    시인 김수우

이 매력적인 문학 공간은 시인 김수우에게도 남다른 곳.
영도에서 태어나 사춘기를 보냈기에 더하다고. 등하굣길과 산복도로 동네, 영도다리의 밤… 하나 하나가 시인 삶의 원형처럼 뿌리내렸다.

 그녀가 살았던 신선동은 움막과 판잣집 촌이었다. 아직도 이 곳 집들은 다닥다닥 땀띠나게도 붙어 있다.

신선동에서 봉래동 골목 사이사이로 손수레 이삿짐을 끌고 다니며 살았다고. 개발이 많이 되긴 했지만 영도만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함께 간직해주고 있지.




이런 특별함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배경으로 영도를 택하고 있나봐.
영화에도 있잖아. ‘꼬방동네 사람들’.
소설로는.. 방인극 작가의 장편소설 ‘마노의 향불’, 김은국의 ‘순교자’, 박경리의 ‘파시’, 조해일의 ‘내 친구 해적’ 등.

 1930년대 영도는 나룻배를 타고 다녔대. 전쟁 직후엔 피난민에 판자촌, 고기잡이 어선 같은 풍경이 채워지며 여러모로 예술작품의 모티프가 됐던 거지.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곳은 부산 사람들을 가장 멀리까지 보는 곳이야.
바다를 무대로 내일을 일구며 사는 섬.
우리네 인생과 많이도 닮았지 않니.




9월 4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올해 영도 축제.
성황리에 막을 내리고
영도다리는 이제 복원을 위해 해체 공사에 들어갔어.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잊지말아야 할 우리의 근대 역사 ‘영도다리’.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살아나길.



- 부산 사는 고아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