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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이야기/아나운서 비밀노트

아나운서 굴욕 2


굴욕2-1.

아나운서가 된지 2년, 얼굴도 모르는 후배지만 대학교 후배들이 나를 보고 싶어한다.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싶고 친분을 쌓고 싶단다.

멋진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도 말고, 화장도 방송할 때 그대로 완벽히 마무리하여 풀 세팅한 자태로 택시에서 내린다.

또각또각 당당한 커리어 우먼의 걸음걸이로 학교 정문 앞을 배회 한다.

'오랜만에 보는 모교~ 많이 바뀌었네~~♪'

새침하면서도 자신감 넘친 표정, 완벽한 세팅~
왠지 여기저기서 날 흘끔흘끔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훗~ 기분이 참으로 좋다.


'이 녀석들이 선배를 기다리게 하네~~' 생각하던 찰나,


경상도 말투의 꼬부랑 할머니 : (내 등판을 철썩 때리며) 니가 아침에 여기 X 쌌나?!

나 : ???!!!!!!

할머니 : 니가 아침에 여기 X 을 이만-치 싸놔서 내가 다 치웠다 아이가~~~~

나: ;;;;;; 아, 아니~

할머니 : 니는 왜 만날 X을 은행 문 앞에서 싸놔가지고~~ 사람들이 밟고~어쩌고저쩌고..

나: 제,제가 안 쌌는데요 할머니-;

할머니 : (또 한 대 철썩 하며) 어데 거짓말을 하노~ 어쩌고 저쩌고..


...........


알아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말들,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뒤에서 슬그머니 다가와
"서, 선배님.... 맞으시죠??"
하는 후배들....

OTL.


그 할머니,, X에 한 맺힌 일이 있으셔서 정신줄을 놓으셨는지...

마음은 아프고,
나는 그 날 후배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사케를 들이켰다....










굴욕 2-2

2004년 12월, 아나운서 합격 직후 운전면허 연습장.

'직장도 생겼겠다- 이제 면허도 따고 내년엔 멋있게 차 몰고 출퇴근 하는 거다~! ♪'
하는 생각으로 바로 면허 학원에 등록,
운전연습을 위해 추위를 무색케 할 만큼 새벽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알다시피, 서울의 운전면허 학원은 대부분 등록처만 시내에 있고, 연습장은 한 시간 떨어진 교외에 있어서 강남 등지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한적한 시골 교외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아침 수업을 위해선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덕분에
자다 일어난 게슴츠레한 눈을 겨우 뜬 채,
매일 같이 보온에만 신경쓴 두툼하고 투박한 오리털 점퍼,목도리,털모자 등으로 무장을 하고 겨우겨우 집을 나서야 운전대를 온전히 잡을 수 있었다.


한... 연습 사흘째 되던 날인가?
유난히 깡 시골에 위치한 그 운전면허 학원 대기실에서 시간을 기다리며
그 불쌍한 차림과 표정으로 난로를 쬐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부른다.


갔더니,,

사장: (다정한 눈빛으로) 나는 여기 사장이오. 이름이..??
나: (겁 먹고) 왜 그러시는데요?
사장: 수강하시는 분 성함이...??
나: 고은령인데용..
사장: 이름도 좋네. 내일부터 우리 회사 경리로 나오는 거 어떻소.
나: 예~~~~?!
사장: 이래봬도 괜찮은 회사요. 아, 아, 직장이 지금 있으신가보구만??
나: 아.. 하하.... 예... 얼마전에 취직했죠. (K방송국 아나운서요!!.... ;;)
사장: 거기는 연봉이 얼마요. 내가 더 올려주지. 정직원으로 채용할 건데? 별론가?
나: 아.. 하하.... 거기도 정직원이라서요... 괜찮습니다...
사장: 안 되겠나? 생각해봐요.. 아, 아깝네. 인상 참 좋으신데..



.........
내가 산수에 약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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