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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이야기/고아나 다시보기

10주년 피프 시절 사설

2006.10. 작성. 옮겨옴.


10년을 보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새로운 첫 해를 시작한다. 오는 10월 12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11회 부산영화제의 알뜰한 차림표엔 다가올 10년을 위한 새로운 메뉴도 포함돼 있다.



10년과 11년의 차이는 크다. 11년은 미래의 10년으로 접어드는 첫 번째 해이기에 초심보다 더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지난 9월 12일 열린 부산영화제 초청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지난 10년은 부산영화제가 아시아의 영화제로서 안정적인 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면, 미래의 10년은 아시아, 한국영화의 새 지평을 열고자 한다. 그 첫 해로서 금년의 의미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노력은 올해 처음 운영되는 아시안필름마켓(Asian Film Market, AFM), 지난해 출범한 아시아필름아카데미(Asian Film Academy, AFA), 1억 2천만 원의 펀드를 조성해 아시아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지원하는 아시아 다큐멘터리 네트워크(Asian Network of Documentary, AND)에 집중될 전망이다. 특히 AFM은 PPP, BIFCOM을 포용해 완성된 영화를 판매까지 하는 '영화 토털 서비스'를 제시할 예정이다. 10주년의 화려함을 정리하고 침착하게 내실을 다지겠다는 11회 부산영화제는 63개국에서 온 245편의 초청작들을 통해 세계 영화계의 주요 작가들과 부산과 친숙한 아시아의 거장, 신인들을 불러 모은다. 이중 64편은 부산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갖는 작품들이다. 지난 10회 때 307편의 초청작 가운데 61편이 월드 프리미어였던 걸 감안하면 큰 성과다. 한편, 올해부턴 미국의 연예산업지 ‘버라이어티’가 부산영화제에서 영문 데일리를 발간한다. 이를 위해 ‘버라이어티’에서 파견된 20명이 영화제 기간 내내 부산에 상주할 예정이다. 점점 더 많은 시선이 부산을 향하고 있다.

 

 

 

변화하는 아시아 좇기

올해 부산의 개막작은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다. 갑작스럽게 연인을 잃은 남자와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는 멜로드라마로,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이 주연을 맡았다.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소재로 다루며 찬란한 가을 풍경 아래서 한국사회가 치유하지 못한 상처와 상실감을 위로하는 영화다. 폐막작은 최근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닝 하오 감독의 <크레이지 스톤>이 선정됐다. 비취 보석을 훔치려는 일당과 이를 막으려는 공장 관리인들의 좌충우돌을 담은 블랙 코미디로, 중국사회의 현실을 감각적으로 풍자한다.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모두 얻어낸 만큼 중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세계 영화제 거장들과 신인들의 화제작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영화제의 공식 섹션은 활기차 보인다. 10월13일 열리는 1회 로마국제영화제와의 초청작 유치 경쟁이 불가피했지만 39편이 상영되는 ‘아시아 영화의 창’에선 아시아 영화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맡은 젊은 감독들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영화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이들 국가는 최근 정부 차원이나 민간 차원에서 독립영화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뉴말레이시안 시네마’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평가 받는 호 유항의 <여우비>, 제임스 리의 <다시 사랑한다면>, 홍콩 아줌마들의 지리멸렬한 삶을 담아낸 리 컹록과 웡 칭포 공동 연출의 <엄마는 벨리 댄서>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이외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초의 시대극 <하나>, 리강생 최고의 연기가 담겼다는 차이 밍량의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츠카모토 신야의 몽환적인 미스터리물 <악몽탐정>,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개미의 통곡>,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도 시네필들의 가슴을 자극할 기대작들이다. 열한 번째 '새로운 물결‘은 그에 비하면 훨씬 젊다. 청춘과 사랑, 가족의 의미를 묻는 동시에 독특한 판타지를 선사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동성애와 우정을 함께 다룬 레스티 첸의 <영원한 여름>, 쓰레기를 수집하는 두 자매의 공상에 관한 이야기 <울 100%> 등이 눈길을 끈다. 한국작품으로는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와 <역전의 명수>로 데뷔했던 박흥식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경의선>이 포함돼 있다.

10회까지 유지됐던 ‘한국영화 파노라마’는 약간의 변화를 갖는다. 우선, ‘한국영화의 오늘’로 섹션 명을 교체했고 초청된 영화들은 다시 봐야 할 화제작들을 선정한 ‘파노라 마’, 저예산독립영화 가운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비전’, 영화제 이후 개봉될 영화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미리 만나보는 ‘스페셜 프리미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소개된다.

이중 눈여겨 볼 것은 '비전'이다. 허문영 프로그래머는 "세 부분으로 나눈 이유는 ‘비전’에 있다. 이윤기, 노동석, 민병훈 감독 등 저예산으로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의 세계를 기존 ‘한국영화 파노라마’의 틀 안에서는 담아낼 수 없다고 여겨 이 같은 변화를 꾀했다“고 밝혔다. ‘스페셜 프리미어’에선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오리지널 버전으로 상영된다.

올해의 ‘월드 시네마’ 는 역시나 거장들의 관록과 품격이 자리한다. 우선 브루노 뒤몽의 <플랑드르>, 토니 갓리프의 <트란실바니아>, 마이클 윈터버텀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 등 올해 칸과 베를린 수상작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라스 폰 트리에,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난니 모레티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비롯해 지난 8월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혜성 같이 등장한 안드레아 슈타카의 <젊은 여자> 등 주요 영화제 상영작들도 대부분 초청됐다.

올해의 중요한 다큐멘터리로 꼽히는 대니얼 고든의 신작 < 푸른 눈의 평양 시민>도 첫 선을 보인다.

 ‘와이드 앵글’ 부문에선 한국 단편, 13편과 다큐 10편을 포함한 23편이 상영된다. 특히 독립다큐제작자, 미디어 활동가 17명이 모여 만든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기록을 목격할 수 있다.

예년보다 2편가량 늘어난 ‘크리틱스 초이스’에선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 수상작인 <부쿠레슈티의 동쪽>과 파라과이 산 35mm 장편 대작 <파라과이식 그물침대>, 2006년 카를로비바리영화제 특별상영작 <마르타> 등 문제작들이 관객의 솔직한 평가를 기다린다.

올해 부산의 특별전은 10주년에 비하면 단출한 편이지만 그리 부족하지도 않다. ‘동시대 프랑스 작가들’은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으로 현재 프랑스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대표작 13편을 망라했다. 이 특별전을 위해 파트리스 르콩트, 브누아 자코 등 현역 프랑스 거장들이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부산을 방문한다. '애니 아시아! : 아시아 장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도약 2’ 에선 곤 사토시의 신작 <파프리카>와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건너온 소녀>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저력을 과시하지만, 타이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칸 쿠웨이>, 싱가포르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조디악> 등 변방 애니메이션들과의 만남도 주선한다. 한국영화 회고전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각고의 노력 끝에 발굴, 복원한 신상옥의 영화 <열녀문>이 한국영화의 역사를 증거한다.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미셀 오슬로의 신작 3D 애니메이션 <아주르와 아스마르>을 비롯해, 거스 반 산트, 코엔 형제 등 20여 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사랑해, 파리>가 만드는 ‘오픈 시네마’의 낭만도 올해 부산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향후 10년을 위한 준비

오는 10월 12일 안성기, 문근영의 개막식 사회로 막을 올리는 부산영화제는 올해 74억 원의 예산으로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한다. 보다 관객지향적인 영화제를 표방하며 부산이 계획한 올해 관객 행사의 중심은 해운대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남포동 PIFF 광장의 연이은 사고로 확실한 개선이 요구됐던 바다. 남포동의 야외무대도 여전히 운영되지만 영화제 측은 9일 동안 해운대 백사장 위에 컨테이너 건물을 설치하고 백사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해운대 파빌리온’을 운영하며 야외무대 행사를 갖는다. 관객들의 영화 관람은 해운대 메가박스 10개관, 남포동 대영 극장과 신 시가지에 생긴 CGV 7개관을 이용하게 된다. 지난해부터 운영됐던 네이버 PIFF 관객 카페와 레이브 파티인 '씨네마틱 러브', 해운대 수영만 야외상영관에서의 '오픈콘서트' 등도 다시 진행된다. 특히 호응이 컸던 ‘감독과 영화보기, 감독. 배우와 영화보기’는 올해부터 ‘시네마 투게더’라 는 이름하에 스탭까지 참여하는 자리로 확대됐다. 11회 핸드프린팅의 주인공은 뉴커런츠 심사위원장을 맡은 헝가리 거장 감독 이스트반 자보와 누벨바그의 여신 안나 카리나가 이어간다.

부산영화제의 관객 서비스가 기존의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정비했다면 부산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첫 번째 AFM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시용이 아닌 실제 비즈니스 중심의 마켓이자 아시아에서영화 관련 비즈니스를 부산에서 모두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부산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올해의 첫 걸음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필름 스크리닝은 해운대 프리머스 10관을 이용하며 120회의 스크리닝이 예약돼 있는 상태.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마켓의 성과가 향후 부산의 10년을 좌우할지 모르는 일. 10년을 내다보는 첫 발,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내딛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