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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아나이야기/책, 영화, 전시

향기로운 인연 - 이주행 외(고은령도-*) 지음

방송화법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이주행 (역락,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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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발음사전(표준)
카테고리 사전
지은이 이주행 (지구문화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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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국어(한국어 능력평가)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이주행 (지구문화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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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사 시험을 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한 책도 많이 내신 이주행 교수님 >




학교 은사님께서 올해 정년퇴임을 맞이하셨어.
퇴임 기념으로 책을 내셨는데, 스승님이 내게도 부탁하시어 영광스럽게 내 글도 실리게 되었단다-.
퇴임 후에도 놓지 않으실 펜이시지만, 그동안 감사했다고 제자를 대표해 인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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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시간은 냉정한 성실함으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라고 채근한다. 이 시간 앞에 내가 준비해놓은 것은 결혼과 새로운 공부라는 인생의 큰 도전. 내겐 여느 해와는 다른 진짜 ‘새해’가 될 것이다.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에 또다시 이 분이 떠올라 전화 번호를 찾는다. 도움의 말씀을 해주실 거야…… 역시다. 역시 언제나처럼 따뜻하게 축하해주시고 가족보다 더 기뻐해주신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올해 정년을 맞이하신단다. 나만큼 이 분께도 2010년은 ‘시작’의 해가 되시는 셈인 것이다. 제자 된 마음으로는 교정을 떠나심이 못내 아쉽지만 온 마음을 다해 그 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드리며 축하 드리고 싶다. 이 분은 바로 내가 유일하게 스승이라 부르는 존경하는 이주행 교수님이다.

대학 시절에는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썼다. 이주행 스승님께만큼은. 존경의 표현이었다고 할까? 존경의 뜻을 담고 있는 ‘선생님’이, 직함의 의미가 큰 ‘교수’보다 훨씬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멀리 아래에서 학생들이 올려다보기에도, 옆에서 주변 교수님들이 지켜보기에도 항상 연구 집필과 강의 준비로 교내에서 가장 바쁘셨던 스승님은 모두의 존경과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교수님’이란 호칭보다 ‘선생님’ ‘스승님’이 더 어울리는 분이셨다.

수업 시간에도 거친 소리, 언성을 높이는 일은 거의 없으셨고 신사답게 학생 한 명 한 명을 대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법을 주로 강의하셨지만 ‘소처럼 살다 가리라’와 같은 에세이에서 느껴지듯, 스승님의 수업은 딱딱하기보다 특유의 침착한 유머와 촉촉한 감성이 묻어나 보들보들했다.

그래서였을까? 꼭 젊고 잘생겨야 인기가 있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여학생들로부터 ‘원조 꽃중년 교수’로 우뚝 서 인기도 꽤 구가하셨다.

잊을 만 하면 똑똑 하고는 교수연구실 문을 빠끔 열고 들이닥쳐 주기적으로 괴롭힘을 가해도, 바쁜 와중에도 허허 웃으며 집필 하신 책도 건네주고 담백하게 조언해주시던 조용한 카리스마. 인기가 없을 리가 없다. 나도 그 카리스마에 중독돼 상담거리를 일부러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건네주신 책 앞장에 직접 서명해주신 필체를 발견하고는 마치 연예인 사인이라도 받은 냥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일도 떠오른다.

하나 하나 떠올리면 잔잔한 웃음을 주는, 대학 시절의 추억이고 재산이다.

아나운서로 KBS에 입사한 후에도 스승님은 내 소중한 재산과 추억 만듦에 일조해주셨다. 아나운서 입사 시험 때, 부모님마저 안 될 거라며 의심하였음에도 스승님만은 믿고 격려해주셨었고, 그래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도 들뜬 마음으로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었다. 축하 말씀과 함께 도움될 책들을 안겨주셨던 존경하는 스승님. 책을 든 양 손만큼 무거워진 책임감으로 내 직업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철 없이 들떠있기만 한 나를 다잡아주신 그 마음이 곱씹을수록 감사하다. 아나운서라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며 그 날 ‘모음 사각도’를 쪽지에 연필로 그려주신 것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후배들에게도 전수하고 있다.

지방에 발령을 받아 본격적으로 근무하면서도 그랬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조언이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불충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연락 드릴 때마다 선생님은 고향의 아버지처럼 반겨주시고 도움 주셨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상담을 할 때는 잘했다고 내 편이 되어주셨고, 애인과 헤어져 힘들다는 응석에는 단호한 쓴 소리로 걱정의 말씀도 해주셨다. 떠올려 보면 부끄럽고 염치 없는 이 제자가 선생님과 연을 꿋꿋이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존경해 마지 않는 이 분의 한 없는 내리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해는 60년 만에 찾아온 백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호랑이는 만인에게 무섭기도 하지만 또 친숙한 동물이다. 이 맹수가 친숙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전설 속 호랑이가 따뜻한 동물로 기억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교수님은 한 편으로는 묵묵한 소 같으시지만 일면 이 같은 호랑이와도 흡사하시다. 맹수처럼 열심히 일하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몸 담아오신 교수로서의 삶을 일부 내려놓고 또 다른 시간을 향해 매진해 나가실 그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스승님의 그 간의 노고와 열정에 한 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내드리며, 수많은 제자와 팬을 대표해 감사의 절을 글로나마 올린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 20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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