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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이야기/아나운서 비밀노트

아나운서 합격의 오해와 진실

  
   <아나운서가 되고나서  지망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

    "학교가 달리는데 괜찮을까요?"
    "연고대 이하는 거의 없다는데, 지방대 출신은 서류에서 떨어지겠죠?"
    " 키 제한은 몇 센치인가요?"
    "솔직히 빽 없으면 안 되는 데 아닌가요??"
   "들어가서도 빽 있거나 피디한테 접대 잘해야 뜰 수 있다면서요?"


  질문 들을 때마다 나는,
  "학교 때문 운운 할 거라면 처음부터 이 쪽에 발 담글 생각마라. 그 정도 자기 믿음, 자신감 없는 애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니가 떨어진다면 그건 지방대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그 열등감 자체 때문일 거다."

  라는 말부터 시작해, 세게 꾸짖었다.



  하지만 솔까말~~
  <나야말로 그 고민을 제일 많이 했던 사람이다.>
 
  연고대는 되어야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키가 작아서 현직 아나운서들 키 조사하는데 여념 없었고,
  시험장에 갈 때마다 경쟁자들 기럭지부터 훑었으며
  빽에 대한 소문은 거의 확실시되는 것부터 카더라 통신까지... 너무 많아서 내 귀를 닫는 수밖에 없었다.


 
( MBC 등 프로필 사진을 요구하는 방송사에 냈던 가난쟁이의 프로필 사진.
                - 친한 아카데미 언니가 내 300화소짜리 디캠으로 찍어준 거다. )

  결과는?
  됐다!!! KBS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난 대학 때부터 등록금을 걱정해야 했고, 과외를 해서 번 소득으로 아나운서아카데미를 겨우 부모님 몰래 다녔으며
  키도 160이다. 몸도 지금보다 통통했다.
  내가 시험 보러 가면 다른 경쟁자들끼리 쑥덕이는 소리, '쟤는 안 될 것 같애..'를 듣기도 예사였다.
 
 그런 찌질한 내가 된 거다.
 빽 없고 쬐끄만 내가.
 그래서 난 겁내는 지망생들에게 거침 없이 말할 수 있게 됐다. 하면 된다고.



  최선을 다해보마 정말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준비했었다.
  빽이나 외모는 안 되도 내 실력을 보고선 뽑지 않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겠다!! 하고.
  혹시 빽이나 학벌, 키나 얼굴이 우선이라도, 그런 애들 99% 뽑고 1%는 실력 우선으로 본다면 난 그 10%에 들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또한 그만큼 열심히 했다.

                                            2004년. 아카데미 수업 중.

 

< 떨어지는 고통, 떨칠 수 없는 의심 >

 KBS는 한 번에 붙었다지만 그 전까지의 내 눈물은 이루 말을 못한다.
 정말 숱~~하게 떨어졌더랬다. 인터넷 방송국이며 케이블 방송국 등등.... 한 50군데는 될 거다. 애완견TV,  인터넷 부동산TV, 여행전문케이블채널.....닥치는대로 지워했고 보란 듯이 떨어졌다. (어떤 땐 다시 찾아가 왜 떨어졌나 물어보기도 했다. ^^;)
 
1. 지방 MBC 등에서도 여러번 떨어졌다.
 그 때는 좀 슬펐다. 말로만 듣던 학교와 외모 위주의 심사가 이루어졌으니까.
 어떤 지역공중파에서는 점수를 매기는데,미리 서울,연고대 출신 애들만 동그라미를 쳐두고, 1차 오디션에서 지원자들이 올라가면 낭독 시작 전에 키와 외모로 x자 표시를 해가고 있었다. 지원자들은 심사위원들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따라서 바로 뒤에 앉은 지원자에겐 그들의 O,X가 다 보였다.
 

 2.아나운서가 된 이후에 만난 모 지역민방 피디는 대놓고 그랬다.
   '우리는 미스코리아가 좋아요.'

   거긴 리포터건 아나운서건 미인대회 출신이 많더라 어쩐지. 흠.


 3. 한 공중파에서도 내정이 의심되는 심사를 본 적이 있다. 2000대 1이라는 경쟁률이어서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10 명 안에 들었다. 얏호. 그 때 나와 함께 면접장에 들어간 지원자 한 명. 그녀는 예독 없이 뉴스대본을 읽는 그 실기면접에서 정말 엉망으로 읽고 있었다. 목소리는 덜덜 떨렸고, 리딩도 더듬거리는데다 처음 들어보는 억양이었다. 하다가, '다시 하겠습니다' 하고 다시 하기까지.

이어지는 면접관들의 질문에서도 목소리는 덜덜 떨렸으며, 어려운 시사질문도 아닌 과거 학교 생활을 묻는 질문에도 더듬거리며 겨우 한 두 마디로 끝냈다. 압박 면접의 느낌이었는데 유독 그녀에겐 추가 질문도 하며 더 대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같네? 어떻게 10 명 안에 들었을까 의아했다.

난 최종 탈락했고, 그녀가 최종합격했다.
내가 경험한, '빽'이 의심되는 가장 직접적인 사례다.




아나운서가 되고나서보니 그런 루머가 돌 법 하더라. 다들 너무 예쁘시고, 키 작은 사람도 적고, 학벌도 다들 쟁쟁했으며, 이름 있는 집안이거나 부유한 집안의 자제분들이 많더라고.
난 심지어 '내가 여기서 가장 가난한 아나운서가 아닐까?' ^^ 이런 생각도 했다.

빽이 통하는지, 얼마나 통하는지 난 모른다. 소문들이 맞는지 난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노력하는 자를 위한 공간은 분명 있다는 것과,
그 공간을 차지하게 되면 나만 아는(나만 알지라도) 우월감, 자신감으로 회사 안에서 업무능력도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건 말해줄 수 있다.
이 같은 자리는 삶 속에서 그 누구보다 큰 자신감과 당당함을 선사할 것이다~*




 - 고아나 Off the Reco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