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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이야기/아나운서 비밀노트

방송국 귀신이야기 - Real Story


(My Real Story)



KBS 부산 방송총국.

2005년 4월 28일. 밤 10시.

오늘도 역시다. 우리 회사 엘리베이터는 버튼을 누르고 한 참 - 그러니까 뚫어져라 쳐다보다 못해 1초, 2초 셈을 하기 시작할 무렵까지-을 기다려서야 바쁘지도 않게 멈춰 서 있다가 움직인다.
이상하다. 오전엔, 그리고 오후엔, 저녁에 탔을 때도 멀쩡한데
숙직자 이외에는 모두 퇴근한 시각, 9시 뉴스를 끝내고 뭉기적 뭉기적 늑장부리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밤 열시가 되면 달라진다. 뇌라도 달렸나~ 시간에 따라 밤만 되면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듯 하다.
항상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이 시각, 저 놈이 좀 무섭다.


어쨌든 왔다. 8층에서 '땡' 하고 인사하며.
문이 열린다.
1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누른다.
아, 이도 역시다. 안 닫힌다.
짜증섞인 숨을 내쉬며 연달아 다섯번, 여섯번을 눌러도 엘리베이터는, 닫히려는 기계 힘을 양팔로 힘껏 밀어 힘싸움을 하는 것 같다.
누가 있나.....
없다.
다시 열번쯤 타다닥타다닥 속사포로 버튼을 누르자 양팔을 놓았는지 스르르 닫힌다.

아, 미치겠다. 밤마다 불도 끄고 문단속 후 아나운서실을 나와 아무도 없는 8층을 걸어 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2006년 4월 28일. 밤 10시.

오늘도 역시 난 엘리베이터의 그녀, (혹은 그와)와 사투를 벌인 끝에 8층에서 문을 닫고야 만다.
'휴우~'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짝다리 자세로 힘 좀 빼려는 찰나,
'땡-.'
이 놈이 멈추더니 열린다. 7층 기술국, 불까지 다 꺼져버린 곳에서.
'누가 눌렀을까....'
갸웃하며 집에 온다.


2006년 5월 1일. 밤 열한 시.

엘리베이터 따윈 무섭지 않아진 나는 책도 뒤적이고 싸이질도 하다 늦게 귀가한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엘리베이터 불러 문닫기'의 사투.

'땡-.'
'어라?' 또 7층?'

또 7층에서 열린다. 지난 금요일에도 그러더니, 이상하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빼꼼히 본다.
'누가 있나~?'
있기는. 불꺼지고 기술국 철문까지 잠겨 있는 걸.



2008년 11월 14일 밤 열두 시.

'아, 야간 근무도 오늘이 마지막이다~흐흐.'
9시뉴스는 오늘까지, 월요일부터는 새벽에 출근해 뉴스광장을 진행하게 됐다. 뉴스의 메인타임은 '9시'라는 케케묵은 생각만 집어치우면 아침근무가 더 낫다.
특히,, 엘리베이터 귀신과도 빠이빠이~~~.

하지만 이제 익숙해진 나는 한 밤의 조용한 사무실을 오히려 즐기게 됐다.
오래 전부터 열두 시, 아니 한 시까지도 앉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유유히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

'오늘, 밤근무의 마지막을 자정 퇴근으로 장식하게 됐군.'

여느 때처럼 11층 꼭대기에 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부른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1초, 2초..... 7초를 세자 내려오기 시작한다.
어? 9층 보도국에서 한 번 선다.

이윽고 8층에서 '뗑-'
선배 기자가 타고 계신다.
난 은밀히 엘리베이터의 '양팔 귀신'을 얘기한다.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아닌데~' 한다.
'난 항상 9층에서 타면 무조건 8층에서 한 번 섰다 가던데? 밤에 탈 때면 말이야.
 아, 그리고 전에 XXX피디가 그러던데, 6층에서 타면 꼭 5층에서 한 번 선대.
 허허허. 엘리베이터가 오래되긴 했지~~.'

....
오싹. 소름이 돋는다.
선배는 안 무서우신가.
아무튼, 이젠 이 귀신 빠이빠이다!!


2008년 11월 17일.

드디어 방송개편.
'좀 졸리긴 하지만 일찍 일어나 먼저 밥 먹고 일하는 부지런한 새가 될 수 있겠어~~ㅎㅎ'

넉넉히 네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새벽 다섯시 반에
반쯤 감긴 눈으로 청경께 인사를 드린다.

1층에서 만난 엘리베이터. 와이리 반갑노~~.
8층을 누른다.
닫힘 버튼.

엥? 안 닫힌다.
다시 닫힘 버튼.
안 닫힌다.

......




2010년 1월 4일.

새해가 밝고 첫 출근.

아침 다섯시 오십분.

닫힘버튼 누르기 신공.

오늘도 난 밤 귀신 대신 새벽 귀신과 밀고 당기기를 한다.

양팔 귀신 이 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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